| 한자 | 花甸子 警察署 襲擊戰 |
|---|---|
| 분야 | 역사/근현대 |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 지역 |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용정시 |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 성격 | 항일 무장 투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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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인물/단체 | 김순덕|해란구 적위대|화전자 경찰서 |
| 발생|시작 시기/일시 | 1935년 5월 |
1935년 5월 김순덕(金順德)이 지휘하는해란구(海蘭區) 적위대(赤衛隊)가 화전자(花甸子)의 경찰서를 습격하여 무기를 탈취한 사건.
1935년 5월 해란구위에서는 김순덕을 비록하여 10여 명의 청년을 선발하여 해란구 적위대를 창건하였다. 적위대는 창건된 그 날부터 이태주 등 몇몇 대원들을 중심으로 검, 창 등의 무기를 제작하였다.
근대적 무기가 없었던 적위대는 일본 군경의 무장을 탈취하고자 하였다. 일본군으로 변장한 김순덕은 10여 명의 적위대원들을 데리고 화전자의 대지주 집을 습격하여 화승총 2자루 등을 탈취하였다. 그 후 다시 밤중에 일본군으로 변장하여 화전자 경찰 분소를 습격, 경찰의 무기를 탈취하였다.
또한 적위대는 벽수의 지주집에서 보총 1자루, 권총 1자루를 빼앗았다. 그리고 철도 ‘호로대(護路隊)’ 4명을 습격하여 총 4자루를 탈취하기도 하였다.
1933년 1월 김순덕이 지휘하는 해란구 적위대 30여 명은 일본군의 토벌을 피하여 왕우구(王隅溝)로 이동하여 연길현 항일 유격대에 편입하였다.
해란구 적위대의 활동이 활발해지자 일제는 이들을 진압하기 위하여 변절한 백창헌을 적위대에 잠입시켰다. 1932년 음력 8월초에 일제는 백창헌과 함께 해란구 적위대원 28명, 주민 20여 명을 학살한다. 이에 김순덕은 나머지 30여 명의 해란구 적위대원들을 이끌고 왕우구 항일 유격 근거지로 이동한 후 연길현 항일 유격대에 편입하였다.
춘황 투쟁 등을 거치면서 농민들이 조직한 해란구 적위대는 화전자 경찰서 습격전 등의 활동을 통해 무장을 강화하고, 일제에 저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