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義成團 |
|---|---|
| 분야 | 역사/근현대 |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 지역 | 길림성 |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 성격 | 항일 무장 단체 |
|---|---|
| 설립자 | 편강렬|양기탁 |
| 설립 시기/일시 | 1923년 11월 |
| 해체 시기/일시 | 1924년 11월 |
| 개칭 시기/일시 | 1924년 11월 |
| 최초 설립지 | 만주 길장선(吉長線) 변의 잡륜(卡倫) |
1923년 11월 편강렬 등이 만주 길장선(吉長線) 주변의 잡륜(卡倫)에서 조직한 무장 독립운동 단체.
의성단은 1923년 11월에 성립되었으며 적극적인 항일 무장 투쟁을 펼쳤다. 단장은 편강열(片康烈)이었고, 고문은 양기탁(梁起鐸)이었다. 의성단은 일제의 침략 기관 파괴와 친일파 척결을 통한 항일 투쟁을 전개하였다.
활발하게 활동하던 의성단은 1924년 7월 하얼빈에서 단장인 편강열이 일제의 영사관 경찰대에 체포된 후 그 활동이 약화되었다. 이후 의성단은 승진(承震)이 단장에 선임되어 이끌어 오다가 1924년 11월 통의부(統義府)·서로 군정서(西路軍政署)·광정단(光正團) 등 7개 독립운동 단체와 통합하여 정의부(正義府)를 성립시키고 해산하였다.
적극적인 항일 무장 단체로 ‘남만(南滿)철도의 파괴, 조선총독 및 관동장관(關東長官)의 암살, 한국 내 관공서의 파괴, 한국 전도에 걸친 군자금의 모집’ 등이다.
의성단은 1923년 11월에 성립되었으며 적극적인 항일 무장 투쟁을 펼쳤다. 의성단이 활동하던 1920년대 중반 만주의 대도시에는 일제의 수많은 침략기관이 건립되어 중국의 경제·문화·사회·군사 등 여러 면을 잠식해 가고 있었다. 그런가 하면 침략 기관 주위에는 이들에 협조하며 생명을 부지하는 친일 한인들이 있었다. 따라서 의성단의 단원들은 이들 일제의 침략 기관과 친일 한인들을 척결하기 위해 노력 하였다.
이를 위해 의성단은 잡륜의 본부외에 이통현 고유수[伊通縣孤楡樹, 책임자; 박성장(朴成章)], 회덕현 오가자[懷德縣五家子, 책임자; 한종열(韓鐘烈)], 판스시엔[磐石縣, 책임자; 이지영(李芝榮)] 등에 연락 기관을 설치하였다. 그리고 단원 모집과 훈련에 힘써 약 50명의 정예 대원을 양성하고 대원 전체가 소지할 수 있는 무기를 구입하여 무장력을 갖추었다.
이러한 기반을 갖춘 의성단은 만주의 대도시인 하얼빈(哈爾濱)·길림(吉林)·장춘(長春)을 무대로 활동을 전개하였다. 단장 편강열의 지휘 하에 단원들은 장춘에 있는 일본 영사관을 습격하여 대대적인 전과를 올렸으며, 봉천(奉天) 시내 만철병원(滿鐵病院)을 습격하기도 하였다. 또 1924년 3월 장춘에서는 편강열과 단원 10여 명이 친일 한인 중 부호의 집을 습격하여 거액의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그러나 이 같은 활동을 전개하던 의성단은 단장 편강열이 1924년 7월 하얼빈에서 활동 중 일제의 영사관 경찰대에 체포당한 후 그 활동이 약화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