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平壤村 虐殺 事件 |
|---|---|
| 분야 | 역사/근현대 |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 지역 |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화룡시 평양촌 |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 성격 | 일본군의 조선인 학살사건 |
|---|---|
| 관련인물/단체 | 일본관동군 제 19연대 |
| 발생|시작 시기/일시 | 1920년 10월 |
| 발생|시작 장소 |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화룡시 평양촌 |
1920년 10월 길림성(吉林省) 화룡시(和龍市) 평양촌에서 일본군이 민간인을 학살한 사건.
화룡현 삼도구 충신창 평양촌에 들어간 일본군은 부녀자를 제외한 남자들은 어린이, 노인까지 전부 살해하였다. 심지어 4~5세 되는 유아도 살해하였다.
1920년 6월 북간도의 봉오동(鳳梧洞)에서 패배한 일제의 조선군(朝鮮軍)은 서북간도지역에 있는 독립군들을 소멸시키기 위해 「간도 지방 불령 선인 초토 계획(間島地方不逞鮮人剿討計劃)」을 세웠다. 일제는 이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만주의 마적단을 매수하여 1920년 10월 2일 혼춘현(琿春縣)의 일본 영사관을 공격토록 하였다.
일제는 영사관을 습격한 마적단을 한국 독립군·중국군·러시아인이 혼합되어 있는 단체라고 주장하였다. 중국군이 있었다고 주장한 것은 간도 지역이 중국땅이기 때문이었고, 러시아인을 주장한 것은 러시아가 간섭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한국 독립군을 주장한 것은 그들의 침략 목적이 한국 독립군이었기 때문이었다.
이와 같이 침략의 구실을 만든 일제는 혼춘 일본 영사관 습격이 있었던 그날 즉시 조선군 전체 병력을 간도 지방으로 침입시켰다. 먼저 남쪽에서는 조선군 제 19사단과 제 20사단의 78연대 소속의 3대대, 헌병대 및 경관대의 연합부대를, 동쪽에서는 이전부터 시베리아에 주둔해 있던 포조(浦潮)파견군 제 14사단 및 제 11사단의 토문자(土門子)지대, 제 13사단의 우입(羽入)지대를 침입시켰다. 북쪽에서는 북만주에 파견돼있던 안서(安西)지대로 그 구성은 3개 보병중대 및 4개의 기관총대, 1개 기병소대였다. 마지막으로 서쪽으로는 1919년 4월 도독부(都督府)가 폐지되고 사령부가 설치되어 주둔하게 된 관동군 제 19연대의 1개 대대 및 기병 제 20연대가 침입하였다.
화룡현 삼도구 충신창 평양촌에 들어간 일본군은 부녀자를 제외하고 남자들은 어린이, 노인까지 전부 살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