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만 운동 단체 협의회

한자 在滿 運動 團體 協議會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길림성 길림시 화전시  반석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성격 독립운동 단체
설립자 현익철|정의부 다수파|심용준|참의부 소수파|최호|신민부 민정파|조선 공산단 재건파 등
설립 시기/일시 1928년 5월 12일 ~ 16일
개칭 시기/일시 1929년 4월
최초 설립지 길림성 화전현
정의

1928년 만주 지역 민족 유일당 촉성 회의 내에서 민족 단체 간의 통합을 논의하는 가운데 단체 중심, 단체 본위 조직론을 주장한 운동가들로 구성되어 조직된 단체.

개설

1924년부터 실현된 중국의 제1차 국공 합작에 영향을 받아 관내의 조선 독립운동가들은 이념 차이로 생긴 파벌을 극복하고 반일 민족 독립이라는 전제로 전 민족의 유일당을 결성하는데 인식을 같이 하였다. 그리고 북경, 상해, 광동, 남경 등지에서 유일당 촉성회를 결성하였다. 같은 해 2월 국내에서는 사회주의와 민족주의 진영이 연합하여 통일 전선을 구축하기 위한 운동이 전개되었다.

국내외의 이러한 움직임은 당시 동북에 있는 독립운동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주었다. 이에 1927년 8월 정의부에서는 신민부, 참의부와의 연합과 유일당 촉성을 준비할 것을 결의하였다. 1928년 2월 정의부, 신민부, 참의부는 영고탑에 모여 3부 통합을 위한 회의를 가지는 것에 합의하였다.

1928년 5월 12일부터 26일까지 길림성 화전, 반석 경내를 돌면서 전 동북 18개 단체들이 참가한 전민족 유일당 조직 촉성 회의가 열렸다. 그러나 회의 중 ‘개인본위 조직론’과 ‘단체 중심, 단체 본위 조직론’으로 의견이 나누어져, 합의를 보지 못하고, ‘민족 유일당 재만 촉진회’파와 ‘재만 운동 단체 협의회’파로 분열되었다.

‘개인 본위 조직론’을 주장하는 촉성회파는 원래의 기성 단체들은 보수성과 파벌성이 있으므로, 모두 해산해야 하고, 개인자격으로 민족 유일당에 참여할 것을 주장하였다. 그리고 ‘단체 중심, 단체 본위 조직론’을 주장하는 협의회파는 유일당 결정에 있어 역사가 있고 규모가 큰 기성 단체들의 연합 전선 형식의 연맹체로 조직할 것을 주장하였다.

그 후 협의회 파는 ‘민족 유일당 조직 동맹’을 통해 3부의 통합을 준비하다가 1929년 4월 길림에서 국민부조선 혁명당을 결성하였다. 국민부는 자치 행정을 책임지고, 조선 혁명당조선 혁명군을 책임지고 활동하였다.

한편 촉성회파는 ‘혁신회의’, ‘민족 유일당 재만 책진회’로 발전하였다.

설립 목적

재만 운동 단체 협의회에서는 민족 유일당의 결성에 있어 역사가 있고, 규모가 큰 기성 단체들의 연합 전선 형식의 연맹체로 조직할 것을 주장하였다.

변천

동북에 있는 독립운동가들은 1927년 봄 연변에 중국 공산당 동만구역국의 주최하에 유일당 조직을 결성할 것을 준비하였고, 남만에서는 같은 해 4월 15일에 정의부 집행위원장인 김동산과 이광민, 김원식 등의 노력으로 유일당 조직을 위한 연석회의가 열렸다. 그리고 8월 제4차 중앙회를 통해서 신민부, 참의부와의 연합과 유일당 촉성을 준비할 것을 결의하였다. 1928년 2월 정의부, 신민부, 참의부는 영고탑에 모여 3부 통합을 위한 회의를 가지는 것에 합의하였다.

1928년 5월 12일 길림성 화전현에서 전 동북 각 단체들이 참가한 전민족 유일당 조직 촉성회의가 소집되었다. 회의에서는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두 개 진영 18개 단체의 대표들이 참가하였다. 회의는 5월 26일까지 화전, 반석 경내에서 자리를 옮기며 세 차례 거행되었다. 회의에서는 김동삼 등 21명의 집행위원을 선출하고, 이들에게 유일당의 헌장을 기초하도록 위임하였으며, 유일당 조직방략 등을 토론하였다.

그러나 토론 중 두 파로 분열되었다. 이들 중 ‘개인 본위 조직론’을 주장한 촉성회파는 조선 공산당 ML파와 김동삼을 비롯한 정의부 소수파, 김소하를 비롯한 참의부 다수파 및 김좌진을 비롯한 신민부 군정파였다. 이들은 원래의 기성 단체들은 보수성과 파벌성이 있으므로, 모두 해산하고 개인자격으로 민족 유일당에 참여할 것을 주장하였다.

‘단체중심, 단체본위조직론’을 주장한 협의회파는 현익철을 비롯한 정의부 다수파, 심용준을 비롯한 참의부 소수파, 최호 등 신민부 민정파와 조선 공산당 재건파 등이다. 이들은 유일당을 역사가 있고, 규모가 큰 기성 단체들의 연합 전선 형식의 연맹체로 조직할 것을 주장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만주에서의 민족 유일당 촉성회 운동이 실패한 후 협의회파는 ‘민족 유일당 조직 동맹’을 통해 3부의 통합을 준비하다가 1929년 4월 길림에서 국민부조선 혁명당을 결성하였다. 국민부는 자치 행정을 책임지고, 조선 혁명당조선 혁명군을 책임지고 활동하였다.

한편 촉성회파는 ‘혁신회의’, ‘민족 유일당 재만 책진회’로 발전하였다.

의의와 평가

만주에서 진행된 민족 유일당 촉성 운동은 협의회파와 촉성회파라는 새로운 대립으로 인하여 실패하게 된다. 그러나 협의파는 국민부와 조선혁명당을 결성하고, 촉성회파는 혁신회의와 민족 유일당 재만 촉진회를 결성하면서 일정 부분 통합에 성공하였다.

참고문헌
  • 김철수 등 9명 저, 『중국 조선족 역사상식』(연변인민출판사,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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