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在滿 朝鮮 無政府 主義者 聯盟 |
|---|---|
| 분야 | 역사/근현대 |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 지역 | 흑룡강성 목단강시 해림시 |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 성격 | 재만 한인 무정부주의자 단체 |
|---|---|
| 설립자 | 김종진 등 |
| 설립 시기/일시 | 1929년 7월 |
| 해체 시기/일시 | 1931년 8월 |
| 최초 설립지 | 흑룡강성 목단강시 해림시 |
1929년 7월 흑룡강성 해림에서 결성된 재만 한인 무정부주의자 단체.
재만 조선 무정부주의자 연맹은 1929년 7월 김종진(金宗鎭) 등을 중심으로 해림(海林)에서 결성되어 만주에 사는 2백만 한인 교포를 대상으로 지방 자치 연합 운동을 전개하였다. 특히 이데올로기보다 동포의 생존에 중점을 두고 농촌의 자치 조직과 교육 강화 운동에 힘썼다. 재만 조선 무정부주의자 연맹은 재만 한족 총연합회(在滿韓族總聯合會)에서 사상 부문을 담당하게 되어 농촌 자치 조직의 건설·교육 활동·무장 투쟁 등을 활발히 전개하였다.
그러나 무정부주의자와 민족주의자 간의 갈등에 의해 김종진이 살해되면서, 만주의 무정부주의자들은 1931년 8월 하순 중국 본토로 이동했고 재만 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은 자연스럽게 해체되었다.
재만 조선무정부주의자 연맹은 김종진 등을 중심으로 한 재만 아나키스트들이 1929년 7월 해림에서 결성했다.
1920년대 후반에 들어오면서 공산주의자들은 만주에서 매우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면서 세력을 확장해갔다. 반면 아나키스트운동은 날로 쇠퇴하였다.
이에 중국 본토에서는 재중국 조선 무정부 공산주의자 연맹을 조직하여 공산주의자와 민족주의자들의 합작에 대항하고자 하였다. 만주에서도 1929년 7월 김종진을 책임의원으로 하여 이을규(李乙奎)·유화영(柳華永)·김야봉(金野蓬)·이달(李達)·이덕재(李德載)·이붕해(李鵬海)·엄형순(嚴亨淳)·이준근(李俊根)·이강훈(李康勳)·김야운(金野雲) 등이 해림에서 재만 조선 무정부주의자 연맹을 결성하였다. 재만 조선 무정부주의자 연맹은 만주에 사는 한인 교포를 대상으로 지방자치 연합운동을 전개하는 한편,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에 저항하였다.
재만 조선 무정부주의자 연맹은 독립운동에 있어 이데올로기를 중시하기보다 만주에 있는 동포의 생존권에 중점을 두고 농촌 자치조직과 교육의 강화에 힘쓰고자 하였다.
재만 조선 무정부주의자 연맹의 기본 강령은 ①우리는 인간의 존엄과 개인의 자유를 완전히 보장하는 무지배사회의 구현을 기한다, ②사회적으로 모든 사람은 평등하고 각인은 자주 창의와 상호부조적 자유합작으로써 각인의 자유로운 발전을 기한다, ③각인은 능력껏 생산에 노동을 바치며 각인의 수요에 의하여 소비하는 경제질서의 확립을 기한다. 등이다.
그리고 강령으로는 ①우리는 만주 동포들의 항일사상계몽 및 생활개혁계몽에 힘쓴다, ② 우리는 만주 동포들의 경제적, 문화적 향상 발전을 촉진하기 위하여 자치와 합작의 협동조직으로 동포들의 조직화에 힘쓴다, ③우리는 항일 전력의 증강과 청소년들의 문화적 계발을 위하여 청소년 교육에 전력을 바친다, ④우리는 한 사람의 농민으로서 농민 대중과 공동 작업하여 자력으로 자기생활을 꾸려 가는 동시에 농민들의 생활개선과 영농방법의 개선 및 사상계몽에 힘쓴다, ⑤우리는 자기사업에 대한 연구와 자기비판을 정기적으로 보고할 책임을 진다, ⑥우리는 항일독립전선에서 민족주의자들과 우군으로서 협조하고 협동작전에서 의무를 수행한다. 등을 제시하였다.
한편 김종진은 신민부(新民府)의 김좌진(金佐鎭)과 만나 공산주의에 대항하기 위해 무정부주의 노선에 의한 독립운동을 전개할 것에 합의하였다. 그리하여 신민부를 해체하고 재만 한족 총연합회로 개편하였다. 여기서 사상부문은 재만 조선 무정부주의자 연맹이 담당하기로 하였다. 김종진·이을규 등은 김좌진의 후원 하에 무정부 주의의 이념을 실현하기 위하여 농촌 자치 조직의 건설·교육 활동·무장 투쟁 등을 활발히 전개하였다.
그러나 김좌진이 암살됨으로써 이러한 활동은 커다란 난관에 부딪히게 되었다. 더욱이 1931년 7월 초순에는 재만 조선 무정부주의자 연맹의 이준근과 김야운이 민족주의자들에게 피살되었으며, 한족 총연합회와 재만 조선 무정부주의자 연맹의 중심인물인 김종진 마저 박내춘(朴來春)·이백호(李白湖) 등의 민족주의자들에게 납치되었다가 처형당하고 말았다.
결국 만주의 무정부주의자들은 1931년 8월 하순 중국 본토로 이동하여 남화 한인 청년 연맹에 합류하였다. 이로써 만주에서의 한국인 무정부주의 운동은 종말을 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