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독립 동맹 북만 특별 위원회

한자 朝鮮 獨立 同盟 北滿 特別 委員會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흑룡강성 하얼빈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성격 민족통일전선단체
설립자 김택명(이상조)|정경호|현용조|현정민
설립 시기/일시 1943년 10월 6일
해체 시기/일시 1946년 7월
최초 설립지 하얼빈
정의

1943년 10월 6일 김택명이 조선 독립 동맹의 명령에 따라 중국과 조선 동북 지역의 운동 세력간 연계를 위하여 설립한 조직.

개설

조선 독립 동맹은 조선과 동북에서의 조직을 확장하고 반일 투쟁을 폭넓게 전개하기 위하여 김택명(金澤明, 본명 이상조(李相朝))을 동북으로 파견하였다.

김택명은 동북으로 올 때 여러 가지 임무를 부여받았다. 동북과 조선의 반일 단체를 중국화북의 독립 동맹과 연계하는 것, 조선의 유명한 진보적 민족주의자들과 접촉하여 혁명 단체를 조직하고 통일전선을 건립하는 것, 조선의 공산주의자들과 연계하여 운동을 전개하는 것, 동북의 항일 무장대와 연계하고 동북지방 조선 청년들을 참가시켜 항일 무장 역량을 강화시키는 것, 기성조직을 발견하지 못하면 자력으로 조선 민족 반일 통일 전선을 결성하여 조선 민족의 역량을 강화시키는 것이다.

김택명은 이러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하얼빈을 중심으로 여러 곳을 다니며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리고 1943년 10월 6일 정경호, 현용조, 현정민 등과 함께 하얼빈에서 회의를 열고 “조선 독립 동맹 북만 특별 공작 위원회”(북만특위)를 설립하였다. 이렇게 설립 된 북만특위는 하얼빈에서 조직을 확대하는데 노력하였고, 1945년에는 소련군이 동북으로 진군할 것을 예측하고 유격전을 준비하였다.

1945년 8월 20일 북만특위는 하얼빈시에서 조직을 공개하고 각 현에 조선 독립 동맹을 통해 조선 사람들을 조직하여 자신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게 하였다. 그리고 9월 25일 ‘하얼빈 보안총대 조선 독립 대대’를 창건하였고, 조선 의용군 제3 지대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활동하게 된다.

이러한 활동 끝에 북만특위는 1946년 7월 해산되고, 중국 공산당이 직접 이끄는 ‘북만지구 조선인 민주 연맹’이 나오게 되었다.

변천

김택명은 1943년 10월 6일 정경호, 현용조, 현정민 등과 함께 하얼빈에서 회의를 열고 “조선 독립 동맹 북만 특별 공작 위원회”(북만특위)를 설립하였다. 설립된 북만특위는 하얼빈 파언현동성 농장의 농민강습소와 협화 청년단을 장악하여 조직을 확대하였다.

1945년 8월 15일 해방을 맞은 후 20일 북만특위는 하얼빈시 도리에 있는 만몽호텔에서 조직을 공개하였고, 같은 해 9월 25일 ‘하얼빈보안총대 조선독립대대’를 출범시켰다.

그리고 1946년 7월 북만특위는 해산하고, 중국 공산당이 직접 이끄는 ‘북만지구 조선인민주연맹’이 나오게 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1943년 10월 6일 설립된 북만특위는 동성농장 농민강습소와 협화 청년단 등을 통해 조직을 확대하였다. 1945년 북만특위는 독일과의 전쟁을 끝낸 소련군이 일본과 전쟁을 벌일 것을 예측하고 유격전을 준비함으로써 소련군의 동북 진공에 대비하였다. 이를 위해 북만특위 수화지부에서는 배낭을 준비하고 방한복, 소금, 성냥과 약간의 식량, 간단한 약품 등을 준비하였다. 상시지부에서는 약간의 무기도 준비하였으며, 파언 동성지부에서는 조경형, 김철준 등이 자위대의 무장을 장악하고 있었다.

1945년 8월 20일 북만특위는 하얼빈시 도리에 있는 만몽호텔에서 조직을 공개하였다. 그리고 회의를 통해 각지의 조선 독립 동맹 조직과 ‘건국 청년회’를 신속히 건립할 것, 강력한 조선인 무장 대오를 창건할 것, 조선인 민중을 안정시켜 생활을 구제하는 것 등을 논의하였다.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조선인 무장 대오를 창건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북만특위에서는 하얼빈시 인근의 조선인들을 대상으로 모병하였고, 1945년 9월 25일 6개 중대로 이루어진 ‘하얼빈 보안총대 조선 독립 대대’를 창건하였으며, 김택명이 대대장이 되었다.

이렇게 북만특위에 조직한 하얼빈 보안총대 조선 독립대대를 기초로 연안에서 나온 조선 의용군과 합세하였고, 11월 25일 조선의용군 제3 지대가 성립될 때, 보안총대의 대대장이었던 북만특위의 김택명이 지대장으로 임명되었다.

북만특위는 조선의용군 제3 지대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활동하게 된다. 이후 국공내전이 발발하자 북만특위는 제3지대에 병력을 지원하였고, 이 외에도 양식, 군복, 자금 등도 계속해서 지원하였다.

의의와 평가

1943년부터 하얼빈시를 중심으로 조선 독립 동맹 북만 특별 위원회와 각 지부를 설립하여 활동하였다. 또한 1945년 해방 이후에는 조선인 중심의 무장 대오를 조직하고, 활동함으로써 조선 의용군 제 3지대로 발전할 수 있었으며, 이는 북만 지역에서 조선인이 정착하는데 기여하였다.

참고문헌
  • 서명훈, 『하얼빈시 조선 민족 백년 사화』,(민족 출판사,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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