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얼빈 보호원

한자 哈爾濱 保護院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흑룡강성 하얼빈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성격 일제 특무기관
설립자 일본 관동군 정보부
설립 시기/일시 1941년
최초 설립지 흑룡강성 하얼빈시 기상 연구소 자리
정의

1941년에 설립된 후, 월경하여 만주에 잠입한 자를 심사하고 이들을 다시 731 부대의 실험 재료로 보낸 일본 관동군 정보부의 특무 기관이자 부대.

개설

1941년 하얼빈시 향방의 교외(지금의 흑룡강성 기상연구소)에 설치된 하얼빈 보호원731 부대에 포로들을 특별 수송하는 부대로 구성원은 모두 일본 헌병이었다. 하얼빈 보호원은 일본 관동군 정보부에서 “월경하여 만주에 잠입한 자”를 심사하는 특무 기관이다. 여기는 소련 및 몽골 포로들을 가둬 놓는 수용소이자 감옥이었다.

설립 목적

만주하여 잠입한 자를 심사하는 목적으로 설립된 특무 기관이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하얼빈 보호원의 정보조사과 과장이자 부책임자였던 아사기시 하끼후[山岸硏二]는 소련 군사법정에서 하얼빈 보호원에 갇혔던 사람들은 모두 731 부대로 이송하였다고 하였다.

하얼빈 보호원에는 조선 사람들도 갇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일본인 니시하라 사찌스케[西原征夫]가 쓴 『하얼빈 무기관-일본 동군 정보부 약사』에 따르면 소련군 출신 조선인 포로에 대해서 ‘지또시’, ‘지또가’, ‘지또혜’라고 불렀다고 하였다. 이는 조선인들을 성명을 쓰지 않고 장교는 ‘지또시’, 병사는 ‘지또가’, 또는 ‘지또혜’라고 표기하고, 그 아래 번호를 달았다고 한다.

참고문헌
  • 서명훈, 『하얼빈시 조선 민족 백년 사화』,(민족 출판사,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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