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얼빈 보안총대 조선 독립 대대

한자 哈爾濱 保安銃隊 朝鮮 獨立 大隊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흑룡강성 하얼빈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성격 조선인 무장단체
설립자 김택명
설립 시기/일시 1945년 9월 25일
최초 설립지 흑룡강성 하얼빈시
정의

1945년 9월 25일 조선 독립 동맹 북만 특별 위원회에서 하얼빈시의 위수 업무를 위해 만든 무장 조직.

개설

1945년 8월 15일 해방을 맞은 조선 독립 동맹 북만 특별 위원회는 많은 간부를 연수, 상지, 아성, 오상, 파언, 목란, 동흥, 수화, 유수 등 여러 현에 파견하여 독립 동맹 조직을 통해 조선 청년들이 조선 군대에 지원하도록 독려하였다.

조선 군대를 모집한다는 소식이 하얼빈시 부근 조선인 거주지에 퍼지자, 수많은 청년들이 지원하였다. 그 결과 8월 22일부터 한 달도 안 되는 사이에 200여 명의 조선 청년들이 하얼빈에 몰려들었다.

독립 동맹 북만 특위는 지원한 조선 청년들을 도리구(道里區) 원 일본인 사쿠라 소학교에 집결시켜 3개 중대를 편성하였다. 그리고 건군 목적, 혁명 도리와 군대 규율 등에 대한 교육과 군사 훈련을 진행하였다.

김택명(金澤明, 본명 이상조(李相朝))은 항일 연군 이조린을 찾아가 부대 건립 의향을 소개하고 무기를 지원해줄 것을 요청하였다. 이에 이조린은 지원을 약속했고, 조선 독립 대대가 창건된 후 2달 후인 11월 19일 무기를 지원해주었다.

1945년 9월 25일 3개 중대가 전원 조선인으로 이루어진 ‘하얼빈 보안총대 조선 독립 대대’를 창건하였으며, 김택명이 대대장이 되었다. 조선 독립 대대는 위만주 국군 제4군구 사령부가 있던 자리에 주둔하고, 하얼빈시 위수 업무를 담당하게 되었다. 당시 하얼빈시 위수 업무는 매우 중요하였다. 시내에는 국민당을 지지하는 조직 또한 생겨났기 때문에 충돌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당시 하얼빈 보안총대 정치위원이었던 조연파(漢族)는 당시 보안총대 3,000여 명 중 약 1,000여 명이 변절하여 국민당으로 넘어갔는데, 조선 독립 대대는 정치적으로 완전히 믿을 수 있는 부대라고 평가하였다.

조선 독립 대대의 명성이 계속 높아지자 여기에 지원하려는 조선 청년들도 많아져서 1945년 11월 중순에는 3개 중대가 더 늘어나 총 6개 중대로 편성된다. 조선 독립 대대는 이후 조선 의용군 제3지대를 건립하는 기초가 되었다.

설립 목적

일제 패망 후 하얼빈시에서 위수 업무를 담당하였다.

변천

1945년 9월 25일 3개 중대로 창건되었고, 11월 중순에는 6개 중대로 편제되었다. 또한 11월 중순 항일 연군 이조린의 지원으로 전원 무장하게 된다. 이후 조선 의용군 제3지대를 건립하는 기초가 되었다.

참고문헌
  • 서명훈, 『하얼빈시 조선 민족 백년 사화』,(민족 출판사,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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