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哈爾濱 東部 郊外 荒山咀子 農民 組合 爭議團 |
|---|---|
| 분야 | 역사/근현대 |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 지역 | 흑룡강성 하얼빈시 황산저자 |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 성격 | 소작쟁의 투쟁 단체 |
|---|---|
| 설립자 | 황산저자 조선인 소작농 |
| 설립 시기/일시 | 1930년 4월 |
| 최초 설립지 | 흑룡강성 하얼빈시 황산저자 |
1930년 흑룡강성 하얼빈시 황산저자의 조선인 소작농들이 혜제 도전 공사(惠濟稻田公司)의 소작농민들에 대한 가혹한 착취에 대항하기 위하여 만든 조직.
황산저자 농장은 1925년 건립된 하얼빈혜제 도전 공사에서 경영하였다. 혜제 공사에서는 1ha 당 생산량을 20섬으로 계산하고, 소작비로 8섬, 물세로 2섬을 받아 총 생산량의 절반을 징수하였다. 조선인 소작농들은 한해 농사의 결과에 상관없이 소작비와 물세는 꼭 납부해야만 했다.
또한 황산저자의 조선인 소작농들은 해마다 농사를 지으려면 혜제 공사의 자금을 10개월간 3푼의 이자로 차용하여야만 했다. 그 결과 1929년 조선인 소작농들이 진 고리대는 이자만 은전 만원이 넘었다. 소작을 해서는 일생을 갚아도 다 갚을 수 없는 빚이었다.
1929년 혜제 공사는 물세와 소작비를 더욱 높이려고 하다가 농민들의 거센 시위에 소작료를 6.5섬으로 낮추었다. 그 외에도 토지 개발비 등의 명목으로 계속해서 수탈하였다.
그리고 1930년에는 다시 소작료를 올리려고 하였다. 이러한 착취를 견디지 못한 조선인 소작농들은 황산저자 농민 조합 쟁의단(荒山咀子農民組合爭議團)을 조직하여 소작료 감면을 위한 투쟁을 전개하였다.
혜제 공사의 황산저자 농민들에 대한 가혹한 착취에 대항하기 위해 조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