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 민주 동맹 문공단

한자 朝鮮人 民主 同盟 文工團
분야 역사/근현대|문화·교육/문화·예술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흑룡강성 목단강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성격 조선인 공연 단체
설립자 동북 신흥 예술 협회
설립 시기/일시 1947년 1월
해체 시기/일시 1948년 10월
개칭 시기/일시 1947년 7월
최초 설립지 흑룡강성 목단강시
정의

1947년 중국에서 조선인 예술인을 양성하고 조선인의 예술을 유지·발전시키기 위해 설립한 단체.

변천

조선인 민주 동맹 문공단은 김예삼을 중심으로 ‘동북 신흥 예술 협회’가 조직되면서 비롯되었다. 1947년 1월 동북 신흥 예술 협회는 30여 명의 배우를 모아 ‘[목단강] 조선인 민주 동맹 문공단’을 조직하였다. 허율이 단장에 맹성인이 교도원에 임명되었다.

1947년 7월 조선인 민주 동맹 문공단은 ‘목단강시 조선인 문공단’으로 개칭되었고 김예삼이 단장이 되었다. 1948년 10월말 목단강시 위원회의 지시에 따라 조선인 문공단은 한족 예술인들로 이루어진 전문 예술 단체인 ‘목단강시 문공단’에 편입되었다.

그리고 1949년 8월 목단강시 문공단이 해산되자 34명의 조선인 예술인들은 모두 ‘송강성 노신 문공단’에 편입되어 하얼빈으로 이동하였다. 1950년 5월에는 다시 ‘연변 문공단’으로 편입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조선인 문공단은 문학·연극·음악·총무 등 네 개의 부서를 두고 각각 황봉룡·원주삼·이한원·최수봉이 부장을 맡았다. 이외 이한룡·김태희·이주석·김성민 등이 활동하였다.

조선인 문공단은 「밀림의 고백」[이한룡 작], 「독충」[황봉룡 작] 등을 목단강시에서 공연하고, 1948년 2월까지 조선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목릉·임구·이수진·계서·수분하 등을 다니면서 공연하였다.

조선인 민주 동맹 문공단 단원인 이한룡이 만든 「밀림의 고백」은 1932년 해란 유격구를 공격하면서 그 곳을 파괴한 일제의 죄상을 폭로하는 내용으로 조선인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은 작품이다.

문공단은 일정한 수입이 없었기 때문에 1948년 4월 목단강시에서 10㎞ 정도 떨어진 철영하 사도하자에서 농사를 지으며 생활하였다. 단원들은 농사를 지으면서 공연을 준비하였다가 농한기나 명절에 공연을 하였다.

의의와 평가

조선인 민주 동맹 문공단의 활동은 중국에서 조선인 예술인들을 양성하고, 민족의 예술을 유지·발전시키는 데 기여하였다.

참고문헌
  • 중국 조선 민족 발자취 총서 편집 위원회, 『중국 조선 민족 발자취 총서(5)』민족 출판사,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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