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朝鮮人 反日 團體 共立會 |
|---|---|
| 분야 | 역사/근현대 |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 지역 | 흑룡강성 하얼빈시 |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 성격 | 반일 자치 조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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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립자 | 김성백, 김성옥, 김형재, 탁공규 |
| 설립 시기/일시 | 1909년 2월 |
| 해체 시기/일시 | 1910년 4월 |
| 최초 설립지 | 하얼빈시 |
1909년 2월 하얼빈에서 김형재(金衡在)와 탁공규(卓公奎) 등이 조직한 반일 자치 조직.
김형재와 탁공규는 하얼빈에서 김성백(金成白), 김성옥(金成玉) 등과 함께 1909년 2월 ‘공립회’를 성립하였다. 공립회는 의지할 곳 없이 해외에 거주하고 있는 한인들이 서로 의지하여 살아가기 위한 조직이었다.
공립회 규정에 의하면 입회금은 인당 30전, 회비는 매달 10전이었다. 회원이 질병에 걸렸을 때는 약값 1원을 주었고, 회원이 사망하였을 때는 장례보조금 3원을 주었다. 생업이 없을 때는 5원을 지원한 후 여유가 생겼을 때 돌려받는 규정도 있었다. 또 회원으로 술주정, 도박, 아편 등의 행위를 하게 되면 1원이상 3원 이하의 벌금을 물리기도 했다.
공립회 참가 인원은 모두 53명으로 회장에 강봉주, 부회장에 윤근성, 총무에 최상준, 서기에 김익지, 간사원에 김기상, 회계에 심기원이 임명되었다.
공립회는 취지와 정관에 따라 각종 활동을 하였으며, 1910년 4월 ‘대한인국민회 만주지방총회’로 발전하기 위하여 해산하였다.
한국인의 생명을 보호하고 환난을 당하였을 때는 서로 구제하며 생업을 넓혀서 충실하게 하고 지식을 발달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1906년 미국샌프란시스코에서 국권 회복을 목적으로 하는 재미교포 항일 단체 ‘공립 협회’가 성립되었다. 이 협회는 『대한 신보』를 발행하였으며, 중앙총회 밑에 샌프란시스코와 하와이에 지부를 조직하였다.
공립 협회 중앙총회는 이강(李剛)을 러시아로 보내어 1908년 ‘블라디보스토크 공립회’를 성립하였고, 기관지로 『대동공보(大東公報)』를 창간하였다.
1908년 10월 이강은 김형재와 탁공규를 하얼빈으로 보내었고, 이들은 김성백, 김성옥 등과 함께 1909년 2월 ‘공립회’를 성립하였다.
공립회는 취지와 정관에 따라 하얼빈에 거주하고 있는 조선인들을 대상으로 자치 조직인인 ‘한민회’와 조선인 교육기관인 ‘동흥 학교(東興學校)’를 세웠다.
1910년 4월 공립회는 ‘대한인국민회 만주지방총회’로 발전하기 위하여 해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