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진채구 虐殺 事件 |
|---|---|
| 분야 | 역사/근현대 |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 지역 |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용정시 장안진 진시구 |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 성격 | 일본군에 의한 조선인 학살 사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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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인물/단체 | 일본 조선군 제19사단 76연대 |
| 발생|시작 시기/일시 | 1920년 10월 23일 |
| 종결 시기/일시 | 1920년 10월 23일 |
| 발생|시작 장소 |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용정시 장안진 진시구 |
1920년 10월 용정시의 진채구 주민들이 일본군에게 학살당한 사건.
진채구는 용정시(龍井市) 장안진(長安鎭)에 소속되어 있고, 장안향 소재지인 위자구에서 서쪽으로 2.5㎞ 떨어진 산비탈에 자리잡고 있다. 실제 지명은 진시구이지만 조선인들은 보통 진채구라고 불렀다.
1920년 10월 23일 일본 조선군 제19사단 76연대는 진채구에 들어가서 민가 70여채를 불사르고 주민 300여 명을 학살하였다.
1920년 6월 북간도의 봉오동(鳳梧洞)에서 패배한 일제의 조선군(朝鮮軍)은 서북간도지역에 있는 독립군들을 소멸시키기 위해 「간도 지방 불령 선인 초토 계획(間島地方不逞鮮人剿討計劃)」을 세웠다. 일제는 이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만주의 마적단을 매수하여 1920년 10월 2일 혼춘현(琿春縣)의 일본 영사관을 공격토록 하였다.
일제는 영사관을 습격한 마적단에는 한국 독립군·중국군·러시아인이 혼합되어 있는 단체라고 주장하였다. 중국군이 있었다는 것을 주장한 것은 간도지역이 중국땅이기 때문이었고, 러시아인을 주장한 것은 러시아가 간섭하지 못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한국 독립군을 주장한 것은 그들의 침략 목적이 한국 독립군이었기 때문이었다.
이와 같이 침략의 구실을 만든 일제는 혼춘일본 영사관 습격이 있었던 그날 즉시 조선군 제 병력을 간도 지방으로 침입시켰다. 먼저 남쪽에서는 조선군 제 19사단과 제 20사단의 78연대 소속의 3대대, 헌병대 및 경관대의 연합 부대를, 동쪽에서는 이전부터 시베리아에 주둔해 있던 포조(浦潮) 파견군 제 14사단 및 제 11사단의 토문자(土門子)지대, 제 13사단의 우입(羽入)지대를 침입시켰다. 북쪽에서는 북만주에 파견돼있던 안서(安西)지대로 그 구성은 3개 보병 중대 및 4개의 기관총대, 1개 기병 소대였다. 마지막으로 서쪽으로는 1919년 4월 도독부(都督府)가 폐지되고 사령부가 설치되어 주둔하게 된 관동군 제 19연대의 1개 대대 및 기병 제 20연대가 침입하였다.
일본 조선군 제19사단 76연대가 진채구에 들어가서 민가 70여채를 불태우고 주민 300여 명을 학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