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高麗 共産黨 再建 滿洲部 |
|---|---|
| 분야 | 역사/근현대 |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 지역 |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 성격 | 단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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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립 시기/일시 | 1929년 9월 |
| 해체 시기/일시 | 1930년 6월 |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27년 7월 |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28년 12월 이후 |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29년 1월 |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30년 1월 |
조선 공산당 재건설준비위원회[재건설 그룹]가 1929년 9월 만주 지역 지도부로 조직한 단체.
1928년 12월 코민테른 정치 서기국이 조선 공산당 지부 승인을 취소한 후 각 꼼그룹은 경쟁적으로 조선 공산당 재건 운동을 전개하였다. 상해 꼼그룹은 ‘「12월 테제」’ 등 코민테른의 새로운 방침을 이동휘·김규열 등에게 전달받았다. 이에 1929년 1월 그들은 재만 공산주의자 동맹을 해체시킨 뒤, 6월에 ‘조선 공산당 재건설준비위원회’[재건설 그룹]를 만들고, 9월에 만주 지역 지도부인 만주부(滿洲部)를 조직하였다.
재건설 그룹은 1929년 7월 길림 청년 동맹 대회에서 과거 조선 공산당의 활동을 전면 부정하고, 「12월 테제」에 입각하여 당을 재건하는 데 힘을 모으자고 주장하였다. 재건설 그룹은 광주 항일 학생 운동을 계기로 재만인의 항일 열기를 고양시키고자, 1930년 1월 국민부·한족 총연합회 등에 맞서 ‘재만 한인 반제국주의 동맹[책임자-김동삼]’을 결성하였다.
이후 1930년 2월에 ‘반석현 한인 반제 동맹’, 3월에는 5개 단체가 연합한 ‘돈화 한인 반제 동맹’, 24개 단체가 결집한 ‘중동선 한인 반제 동맹’ 등이 각각 조직되었다. 또한 재만 농민 동맹을 이탈한 사람들과 독립을 완성할 목적에서 ‘남만 반제 대동맹’을 결성하였다.
1929년 9월 만주부 결성 당시 신민부 민정파 출신의 송상하가 조직부장, 정의부 중앙 행정 위원 출신의 김용대가 북만 지방의 책임자였다. 또한 1930년 1월 한족 노동당의 위원장 출신인 김응섭이 만주부의 조직부장, 정의부 출신인 김동삼이 만주부의 민족부장, 한족 총연합회의 남대관이 동만 지방부의 민족부장을 맡았다.
만주부는 1929년 4월에 창간된 『볼세비키』와 1930년 1월에 창간된 『만주 노(동)력자 신문』을 기관지로 출판하였다. 『만주 노력자 신문』은 1930년 5월 1일까지 제3호를 발행하였다.
1930년 6월경, 조선 공산당 재건 운동가들이 국내로 들어가자, 재건설 그룹의 사회주의 운동가들이 중국 공산당에 입당하기로 결정하면서 고려 공산당 재건 만주부는 해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