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길 학우회

한자 旅吉 學友會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길림성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성격 단체
설립 시기/일시 1920년대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29년 2월 7일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30년 11월 10일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31년 3월 29일
최초 설립지 길림성
정의

192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 활동한 길림성 지역 한인 유학생들의 친목 단체.

개설

여길 학우회는 중국길림에 와서 유학하는 한인 학생들이 조직한 단체였다. 이 단체는 재만 조선인 아동 교육, 단체 내에서의 교양, 한인 유학생들을 위한 공동 기숙사 건립, 재만 학생 통일 문제, 중국 학생들과의 연락 문제, 학생 단체들과의 연락 등에 관심을 보이며 활동을 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동아 일보』에는 ‘여길 학우회’와 관련된 내용이 보도되고 있다. 1929년 12월 16일 기사를 보면 ‘여길 한인 학우회(旅吉韓人學友會)’는 12월 7일 엄평후(嚴平厚)의 사회로 예배당에서 총회를 개최하였다.

이 회의에서는 교양 문제, 재만 학생 통일 문제, 중국 학생들과의 연락 문제, 길림에 와 있는 유학생들의 편의를 위한 시험 안내 및 공동 기숙사 설립 등과 같은 내용 토의 및 10여 명의 위원 피선 등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 단체에는 서무부(庶務部)[김인기(金仁基)·안우(安宇)], 교양부(敎養部)[박우천(朴于天)·이갈윤(李碣允)·권중만(權重滿)], 체육부(體育部)[김두형(金斗烱)·권경묵(權慶默)] 등의 부서와 위원이 있고, 검사 위원(檢査委員)[전경문(全景文)·엄평후(嚴平厚)·황귀한(黃貴漢)]도 있다.

1930년 11월 23일 기사를 보면 길림에 와서 유학하는 조선 학생으로 조직된 ‘여길 한인 학우회(旅吉韓人學友會)’는 11월 10일 위원장 류승주(柳承周)의 사회로 총회를 개회하고 있다. 이 회의에서는 재만 조선인 아동 교육, 자체 교양, 공동 기숙사 기성(期成), 기본금, 해내외(海內外) 학생 단체와의 연락에 관한 건 등을 논의하였다.

1931년 4월 11일일 기사에는 중국길림성에 있는 여길 학우회(旅吉學友會)가 1931년 3월 29일 기독교 예배당에서 17회 정기 총회를 개최하였다. 이 회의에서는 먼저 기본금·회관·교양에 관한 건 등이 결의되었다. 그리고 김인기(金仁基)·안병준(安炳俊)·안우(安宇)·김동열(金東烈)·장시창(張時昌)·채수항(蔡洙恒)·김복당(金復堂)·승소옥(承素玉) 등이 위원으로 피선되었다.

의의와 평가

여길 학우회는 중국길림에서 유학하는 한인 학생들이 조직한 단체로서, 유학생들의 편의를 위한 시험 안내나 공동 기숙사 설립 등을 추진하며 재만 학생 통일 문제 등을 다루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동아일보』, 1929. 12. 18., 1930. 11. 23., 1931. 4. 11.)
  • 네이버뉴스라이브러리(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31041100209207013&edtNo=1&printCount=1&publishDate=1931-04-11&officeId=00020&pageNo=7&printNo=3695&publishType=0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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