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圖們 日本 憲兵 分隊 |
|---|---|
| 분야 | 역사/근현대 |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 지역 |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 성격 | 기관 |
|---|---|
| 설립자 | 간도 일본 총영사관 |
| 설립 시기/일시 | 1940년 대 |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07년 |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07년 7월 30일 |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07년 8월 23일 |
| 1909년 11월 1일 | |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30년 11월 |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35년 5월 |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37년 12월 |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40년대 |
| 최초 설립지 | 길림성 연변조선족 자치주 연길시 |
관동군 헌병대 사령부의 직속 간도 헌병대가 연길·훈춘·춘화 등의 지역과 더불어 도문에 설치한 헌병 분대 가운데 하나.
연변조선족자치주 동남부에 위치하고 있는 도문시는 동쪽으로 훈춘시, 서쪽으로 연길시, 서남쪽으로 용정시, 북쪽으로 왕청현과 인접해있으며, 동남쪽으로는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과 접경을 이루고 있다. 19세기 말 한인 이주민과 한족들이 이주하여 촌락을 형성하며, 회막동(灰幕洞) 또는 하전자(下甸子)로 불렸다. 1933년 돈도 철도 종점을 회막동으로 정한 뒤에 ‘도문’이란 지명으로 변경되었다.
일제는 연변을 침략하기 위해 1907년부터 일본인을 상인·관광객 등으로 위장하여 연변의 지형을 정찰하고 지도 등을 제작하는 정찰 활동을 시작하였다. 특히 일본군 중좌인 사이토 스에지로는 그해 4월에 연변에 잠입하여 비밀 활동을 하였다.
1907년 7월 30일 일본은 러시아와 ‘일로 비밀 조약’ 체결 이후 연변을 잠식하기 위해 용정에 ‘한국 통감부 간도 파출소’를 설치하였다. 일제는 8월 6일 선견대를 규합하고, 8월 20일 사이토가 헌병 61명과 함께 용정촌으로 진출하였으며, 8월 23일 ‘간도 한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이 기구를 설치하였다. 이때 사이토가 소장·시노다가 부소장이 되었다.
1908년에는 이 지역에 더 많은 헌병과 경찰이 파견되어, 중요 촌·진의 13곳에 ‘헌병 분견소’를 설립하였다. 1909년 9월 4일 일본은 ‘간도 협약’을 체결하고, 11월 1일 용정에 설치하였던 ‘한국 통감부 간도 파출소’를 ‘간도 일본 총영사관’으로 개칭하였다.
일제는 연변에 대한 침략을 강화하기 위해서 1920년 조선 총독부로부터 300명의 경찰을 위임받아 총영사관에 경찰부를 설치하고, 10여 곳에 경찰서를 설치하였다. 1928년 10월 2일에는 일본으로부터 100여 명의 경찰을 총영사관에 파견하여 경찰 기구를 강화하였다. 1931년 11월에는 총영사관 경찰부에 ‘특별 수사반’을 두었다.
1930년 11월의 조사에 의하면 총영사관 경찰부의 관할 하에 용정촌·국가자·두도구·동불사·이도구·팔도구·천보산·의란구·대립자·걸만동·부동·팔도하자·백초구·가야하·양수천자·훈춘·흑정자·훈춘 두도구 등 18개소에 경찰서 또는 경찰 분소를 증설하였다. 1935년 5월의 통계에 의하면 경관은 646명이었으며, 이 가운데 경시는 2명·경부는 6명·경부보는 19명 등이었다. 경찰부장으로는 아미바 스끼, 스메마쯔 요시히데, 가이가와 오사나오루, 고가와 요시스께, 소노다 간지 등이 임명되었다.
1937년 11월 5일 ‘만주국의 치외 법권을 철회하고 남만주 철도 부속지 행정권을 양도할 것에 대한 조약’에 의하여, 12월에 ‘간도 일본 총영사관’과 5개 영사분관 및 경찰 기구들이 철회되었다. 하지만 영사관의 관리들의 대부분은 일본 관동군과 특무 기관에 편입되었고, 경찰들은 괴뢰 정권으로 성립되었던 만주국 경찰 기구에 들어갔다. 총영사관에 설치되었던 ‘특별 수사반’은 ‘간도 특별 공작반’으로 이름이 변경되어, 연변에 거주하는 각국의 사람들을 감시하는 활동을 지속하였다.
1940년대 관동군 헌병대 사령부 직속 간도 헌병대 본부는 국자가[1943년 국자가는 간도시로 개명, 오늘의 연길시]에 있었고 연길, 도문, 훈춘, 춘화에 헌병 분대를 설치하였으며 용정, 개산툰, 조양천, 명월구, 안도, 왕청, 금창, 마적달, 두황자, 구사평 등지에 헌병 분주소나 헌병 분견대를 배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