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滿洲 採金 株式會社 琿春 出張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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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야 | 역사/근현대 |
| 유형 | 지명/시설 |
| 지역 |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훈춘시 |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 성격 | 채금 회사 출장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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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초 설립지 |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훈춘시 |
남만주 철도 주식 회사[만철]가 경영하던 사업 가운데 하나였던 만철 채금 주식 회사의 훈춘 출장소.
만주 채금 주식 회사 훈춘 출장소는 러일 전쟁에서 승리한 이후 일본이 남만주 철도 주식 회사가 경영하였던 광산 채굴을 위한 출장소 가운데 하나로 설립된 것이다.
간도 지역은 광산 자원이 풍부하여 러·일 전쟁 이후 많은 사람들이 광산을 개발하려고 하였다. 그래서 이들은 광산에 관련된 탐사·채굴도 하였지만 좋은 결과를 얻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간도의 천보산 동은광, 봉밀구 금광, 팔도구 금광, 훈춘 동구 금광, 훈춘 화보 탄광, 노투구 탄광 등은 비교적 큰 규모를 형성하였다.
남만주 철도 주식 회사(南滿洲鐵道株式會社)는 러·일 전쟁 직후부터 일제가 만주를 침략·경영하는 데 중심 역할을 했던 반관 반민(半官半民)의 국책 회사이다. 일본은 러·일 전쟁에 이은 강화 조약[포츠머드 조약, 1905년 9월] 제6조에 의해 동청 철도 남부 지선의 장춘(長春)에서 여순(旅順)까지와 그 지선(枝線)과 그에 부속하는 권리·특권·재산 및 무순 탄광 등 주요 탄광 등을 양도받았다.
일제는 전쟁을 통해 획득한 철도 등의 이권을 운영하기 위해 1906년 6월 7일 칙령으로 ‘남만주 철도 주식 회사에 관한 건’을 공포하였다. 이로써 만철이 11월 26일 창립되었고, 1907년 4월 1일부터 영업이 개시되었다. 만철은 철도 경영을 주로 하였으나 탄광·제철소 등의 광공업 경영, 철도 부속지의 경영, 조사 연구 사업 등도 병행하였다.
만주 지역에서 일본 제국주의의 이권은 만철을 중심으로 하여 확대되었다. 이미 건설된 철도의 개량 등으로 수송력이 강화되고 독점적 고운임 등으로 주요 화물인 콩과 석탄 등의 수송을 통해 막대한 수익을 올렸다.
제1차 세계 대전 직후부터 만철의 투자 규모는 다시 확대되었다. 무순(撫順) 탄광과 안산(鞍山) 제철소를 거점으로 자원과 중화학 공업을 중심으로 하는 경영의 다각화가 진행되었다. 1936년 11월의 직제 개혁을 거쳐 만철의 양대 축인 철도와 광공업 부분 중 광공업 부문은 무순 탄광을 제외하고 만주 중공업 개발 회사에 이관되었다.
만철은 중국 동북 경내에서 철로·수운·항공 등의 사업 이외에, 광업·야금·전기·농림 축산·문화·교육·관광 등의 사업을 벌였다. 만철이 경영하는 회사로는 안산 제철소[소화 제강소로 안산 강철의 전신]·만주 채금·만주 연광·만주 광업 개발·만주 경금속 제조·일만 마그네슘 공업·동화 기차·만주 전업·만주 화학 공업·만주 염업 그리고 동북의 각 주요 도시에 분포된 만철 의원과 대화 호텔 등이 있었다.
한편 ‘재만 일본인의 직업별 인구[1935년]’를 보면 상인이 23%, 공무 및 자유인이 25%, 공업과 교통업·광산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10% 전후, 농·목·임업에 종사하는 인원이 3% 정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