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吉林 朝鮮 僑民 驅逐 問題 對策 講究會 |
|---|---|
| 분야 | 역사/근현대 |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 지역 | 길림성 |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 성격 | 길림성 지역 조선인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단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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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립자 | 길림시 한인 이주민 |
| 설립 시기/일시 | 1927년 11월 28일 |
| 최초 설립지 | 길림시 |
1927년 11월 28일 길림시에서 중국 관청과 관리들의 부당한 체포와 착취에 대해 저항하기 위해 만든 단체.
중국 동북 지역으로 이주한 한인들 가운데 일부는 적극적인 무장 항일 투쟁을 전개하였고, 많은 이주민들이 중국 관청과 관리의 착취와 억압에 반대하는 ‘반제 반봉건 투쟁’·‘반관부 투쟁’·‘반구축 투쟁’도 적극적으로 시도하였다.
1927년 11월 28일 길림시 한인 이주민들은 민족주의 인사의 건의 하에 ‘길림 조선 교민 제지 구축령’을 제정하였다. 이후 12월에 이주민 대표단이 길림성 정부 측의 대표를 만나 요구 사항을 전달하였다.
1928년 12월 한인 이주민 대표단이 길림성 정부에 요구한 사항은 ‘반일 단체를 취체한다는 구실로 조선 이주민을 마음대로 체포하지 말며’, ‘조선 이민이 친척·친우를 찾아 의거하는 것을 제한하지 말 것’ 등이었다. 또한 이주민의 입적에 대한 일부 요구를 제기하였다. 길림성장은 이주민들의 입적 요구에 동의하면서, 기타사항은 ‘상황에 따라 처리’한다고 하였다. 1928년 1월 8일 투쟁을 지휘한 단체에서는 성장과의 교섭 내용을 이주민들에게 공개적으로 발표하였다.
안동시에서는 ‘청년회’가 반구축 투쟁을 주도하였다. 1927년 12월 18일 ‘안동조선인민회’·‘오동 통제회’·‘실업 협회’ 등이 모여 ‘조선 이주민 단체 대표회’가 개최되었다. 이후 ‘안동 조선 이주민 제지 구축령’을 제출하였고, 20일에 ‘제지 구축 장정’이 통과되었다.
여순·대련의 이주민들은 1927년 12월 4일 ‘대련 고려인회’ 회원을 중심으로 ‘임시위원회’에서 ‘대련 동포 제지 구축령 동맹 대회’를 개최할 것을 결정하였다. 이후 영구·안산·철령·개원·장춘·무순·신민·봉천 등의 지역에서도 조선 이주민들이 회의를 개최하고 여러 방식의 구축제지투쟁을 전개하였다.
또한 중국 동북 각지의 23개 단체는 1928년 1월 9일 40여 명의 대표들이 봉천 서탑의 조선인 교회에 모여 입적문제를 토의하기 위한 회의를 개최하였다. 이 회의에서는 조선 이주민 박해에 대한 상황이 보고되었다. 이 회의에서는 선언이 통과되고, 상설 기구가 설치되었다.
중국 동북 지역으로 이주한 한인들이 자발적으로 반구축 투쟁을 전개하였으며, 이 투쟁을 통해 성과를 얻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