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沐石河 慘變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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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야 | 역사/근현대 |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 지역 | 길림성 통화시 집안시 |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 성격 | 중국 삼림대가 집안현 목석하의 조선인 독립군 부대를 공격한 사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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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인물/단체 | 중국 삼림대|조선 의용군 1중대 3소대 |
| 발생|시작 시기/일시 | 1922년 12월 15일 |
| 발생|시작 장소 | 집안현 목석하 |
1922년 12월 15일 중국 삼림대가 집안현의 목석하에 주둔하고 있던 조선 의용군 제1중대 3소대를 공격한 사건.
장작림은 1910년대 후반부터 일제의 도움을 받아 군비를 강화하고 중국 동북지역을 점령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그는 일제가 도움을 빌미로 제시한 ‘만주에서의 불령선인단체 숙청’ 에 대한 요구에 부담을 느꼈고, ‘불령선인토벌’을 빙자한 일본군의 만주 진출도 두려워하였다. 그래서 그는 1920년 이후 자신의 세력권인 봉천성을 보존하기 위해 일제와 결탁하여 남만지역에서 활동하던 한인 무장 단체들을 통제하고 탄압하였다. 이를 위해 장작림 정부는 각지의 지방 군경들을 동원하여, 관전·환인·집안·흥경·통화 등의 지역에서 한인들의 항일단체를 ‘토벌’하였다.·
1922년 12월 15일 오전 11시경 중국 삼림대 300여 명은 통화현 칠도구에서 마적떼를 추격하여 집안현 목석하 문자구에 도착하였다. 이곳에는 조선 의용군 제1중대 3소대가 임시로 주둔하고 있었다. 삼림대는 이곳이 조선 의용군의 임시 주둔지인 것을 알고, 곧바로 4면에서 조선 의용군을 포위하고 공격하기 시작하였다.
삼림대의 공격 소식을 보초에게 전해들은 조선 의용군현기전 소대장은 비무장한 대원들과 마을 주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무장대원 6명을 마당에 집합시키고 삼림대에게 ‘우리는 조선 혁명군이니 총을 난사하지 말 것’을 전달하였다.
하지만 삼림대는 대항도 하지 않고 있던 현기전 소대장을 비롯하여 김낙수·이봉섭·김인홍 등 4명을 사살하였다. 그리고 삼림대는 의용군의 군복 7벌·목갑총 2자루·독일식 권총 4자루·보총 1자루·탄알 400발·군도 1개·모포 10장·손목시계 1개·망원경 1개·현금 50원과 기타 물품을 약탈하였다.
또한 마을의 서병주·이진문·지성기·서병준·백종성·김관수·황운기·김화경·박통현·신관순·김승환·김용세·김응하·김영진 등 14명의 집에 들어가서, 옷·식기·가방 등 54건의 물건과 현금 57원도 약탈하였다.
중국의 친일 군경들이 한인 무장 단체를 공격한 사례로 참고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