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만 한인 교육 대회

한자 北滿 韓人 敎育 大會
분야 역사/근현대|문화·교육/교육
유형 행사/행사
지역 흑룡강성 목단강시 해림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행사시기/일시 1927년 8월 1일
시작 시기/일시 1927년 8월 1일
행사 장소 흑룡강성 해림시
정의

신민부가 1927년 8월 1일 해림시에서 북만주의 한인 교육을 위해 개최한 대회.

개설

신민부가 북만 지역의 조선인들의 교육 진흥을 위해 1927년 8월 1일 해림에서 개최한 대회이다. 이 대회를 통해 신민부는 조선족 어린이들에게 독립 혁명 사상을 주입하기 위해 소학교를 설치하고 교원을 파견하였으며, 교과서를 국문으로 편찬하여 보급하는 등 항일 의식 고취에 노력하였다. 또한 노동 강습소를 부락마다 설치하는 등 재만 동포의 문맹 퇴치에도 주력하였다.

연원 및 개최 경위

북만주 지역의 독립운동 단체들이 통합을 위해 1925년 1월 목릉현(穆陵縣)에 모여 부여족 통일 회의(扶餘族統一會議)를 개최한 결과 신민부가 3월 10일 영안현(寧安縣) 영안성(寧安城) 내에서 조직되었다.

신민부는 무장 활동도 전개하였지만, 교육 활동에도 적극적이었다. 이는 교육이 북만주 지역 동포들의 큰 바램이었고, 청소년들에게 항일 민족 의식 및 민족주의 사상을 심어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신민부에서는 1925년 3월에 개최된 창립 총회에서 ‘100호 이상의 마을에 1개의 소학교를 설치할 것’, ‘교육을 통일하기 위하여 교과서를 편찬할 것’, ‘기관에서 학교의 관리 방법을 제정하여 교수의 자격을 정하고 노동 강습 및 통속 강습(通俗講習)에 진력할 것’ 등을 결의하였다. 또한 10월에 열린 총회에서는 1백호 이상의 지방뿐만 아니라 30호 이상의 지방에도 사립 학교를 설치하고자 하는 의욕을 보였다.

현황

1927년 8월 1일에는 ‘북만 한인 교육 대회’를 해림에서 개최하였다. 여기에서 독립 혁명 사상을 제2의 국민인 어린 학생들에게 주입하여 장래에 대비하도록 의결하였다. 그에 대한 실천으로서, 주하(珠河)·목릉(穆陵)·밀산(密山)·요하(饒河)·돈화(敦化) 등 15개 지역에 50여 개 소의 소학교를 설치하고, 교원을 파견하였다.

그리고 신민부는 수신·지리 및 역사 교과서 등을 국문으로 편찬하여 항일 민족 의식의 고취에 노력하였다. 또한 노동 강습소를 부락마다 설치하고 교육부원이 강사가 되었다. 이들은 재만 동포의 문맹 퇴치에 주력하였다.

참고문헌
  • 박환, 『만주 한인 민족 운동사 연구』(일조각, 1991)
  • 한국 독립운동사 연구소 편,『한국 독립운동사 사전』57 (한국 독립운동사 연구소,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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