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학사 유적 보존회

한자 三學 學士 遺跡 保存會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요령성 심양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성격 학술 단체
정의

요령성 심양시발해 대학 경내에 있는 삼학사비를 보존, 연구하기 위해 조직된 단체.

변천

삼학사 유적 보존회가 조직된 것은 1933년 5월 심양에서 삼학사[홍익한·윤집·오달제]의 충절에 감동한 청 태종이 세웠다는 비석이 발견된 것이 계기가 되었다. 1931년 2월 오달제의 후손인 오두환은 심양 총영사관 부영사로 부임한 뒤에 오달제와 관련한 유적을 찾고자 북경에 있던 북경대 교수 김구경에게 연락하여 도움을 청하였다.

1933년 김구경이 중일어 강습소의 황윤덕의 도움을 받아 심양 북시장보령사 앞에서 ‘삼한산두(三韓山斗)’의 비액을 발견했다. 그 뒤 오두환이 주축이 되어 관동군 사령부의 홍사익과 윤상필, 심양 조선인 단체의 지도자 격인 임한룡·박준병·지석준이 가세해 총 8명이 발기하여 ‘삼학사 유적 보존회’를 창립했다. 특별 회원이 54명, 보통 회원이 236명이었다. 만주와 한반도의 조선인·일본인들이 삼학사 유적 보존회 회원으로 가입했고 기금을 모았다.

그런데 1960년대 중국 문화 대혁명 당시 파손되어 방치되어 있었는데, 다행히 발해 대학에서 수습하여 둔 것을 계룡 건설이인구 회장의 후원으로 2005년 7월 발해 대학 경내에 삼학사비를 새로 세우고 학사정(學士亭)을 준공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1935년 황윤덕이 비문을 다시 쓰고, 옛날 비액에 새로이 비신과 귀부를 만들어, 서탑 보통학교 교정 안에 새로 새웠다. 비문에는 ‘청나라에서 삼학사의 곧은 절개를 기려 본받게 하고자 심양에 그들의 사당을 짓고 비를 세웠는데, 세월이 지나 없어진 것을 다시 세운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김구경이 송시열의 「삼학사전」에 주석을 붙이고, 『충렬공 유고』에 들어있는 「오학사 유사」와 삼학사 유적 보존회 회원의 명단을 덧붙여 『중간 삼학사전』을 발간하였다.

참고문헌
  • 김일환, 「고난의 역사를 기억하기―삼학사전(三學士傳)과 삼학사비(三學士碑)를 중심으로」(『한국 문학 연구』 26, 동국 대학교 한국 문학 연구소, 2003)
  • 「삼학사 유적 보존회 창립, 최근 봉천에서」(『조선 중앙 일보』, 1934. 6.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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