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실 학교

한자 英實 學校
분야 역사/근현대|문화·교육/교육
유형 기관 단체/학교
지역 흑룡강성 하얼빈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성격 학교
설립자 하얼빈시 거주 조선인들
인가 시기/일시 1920년 8월 2일
최초 설립지 흑룡강성 하얼빈시
정의

하얼빈 주재 일본 총영사관에서 하얼빈시에 거주하는 조선인들을 내세워 1920년 8월 2일에 건립한 사립 학교.

변천

영실 학교하얼빈시에 거주하는 조선인들이 기금을 모아 건립한 사립 학교인 동흥 학교의 전신이었다. 하지만 일제는 하얼빈에 거주하고 있는 조선인[722명]들을 통제하기 위해 하얼빈 주재 일본 총영사관에서 1920년 8월 2일에 하얼빈 조선인 교민회를 설립하고, 1920년 9월 5일에 공립 학교로 영실 학교를 설립하였다.

하얼빈 일본 총영사관은 영실 학교가 일본인에 의해 운영된다는 것을 감추기 위해 조선인 교민회를 내세웠다. 하지만 학교의 운영 경비는 조선 총독부에서 12,000여 원, 남만 철도 회사에서 1만여 원, 조선인 교민회와 학부형들이 1만여 원을 부담하였다. 또한 조선 총독부는 1927년 6월 15일에 남만 철도 회사에 영실 학교를 넘겨주었다. 남만 철도 회사는 1928년 4월 회사 직원을 교장으로 파견, 관리하였다.

1928년 영실 학교는 5년제가 되었고, 1학년부터 5학년까지 5개의 학급에 학생이 모두 142명[남학생 74명, 여학생 68명]이었다. 1929년 영실 학교는 하얼빈 보통학교로 교명을 변경하였고, 도리구 매매가에 있었던 교사(校舍)를 상무가 128호로 옮겼다.

1931년 영실 학교는 6년제가 되었고 11개 반에 702명의 학생이 재학하였다. 교직원은 교장을 포함한 교원 11명과 직원 1명 등 모두 12명으로, 대부분은 사범 학교를 졸업한 이들이었다. 교직원으로는 일본인 교장 야스또 긴사부로[安藤金三郞], 일본인 교원 나베 하루지·기노 시다와사, 조선인 교원인 이금윤·심세석·권갑용·이경식·송일순·이갑도·최지송·김순녀, 중국인 직원 조영성이 있었다. 학교 경영 비용은 1년에 23,517원이 소요되었다. 이는 조선 총독부가 548원, 만철에서 18,199원, 조선인 교민회에서 1,770원, 수업료 및 기타 수입 3,000원 등으로 충당되었다.

교육 활동

영실 학교는 조선 총독부가 편찬한 교과서를 사용하였으며, 「조선 교육령」과 관련 방침을 준수하였다. 교과목은 수신·국어[일본어]·조선어·러시아어·산술·국사[일본사]·지리·이과·도화·창가·체조·작업과 등이었다. 이러한 교육을 통해 일제는 조선인 청소년들을 일본의 충직한 신민(臣民)으로 만들려고 하였다. 조선어는 학과목으로 설치되었으나 일본어보다 수업 시간이 적었으며, 조선의 역사와 지리는 교과목에서 배제되었다.

참고문헌
  • 서명훈, 『하얼빈시 조선 민족 백년 사화』,(민족 출판사,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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