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海蘭江 大虐殺 事件 |
|---|---|
| 분야 | 역사/근현대 |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 지역 |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 성격 | 사건 |
|---|---|
| 관련인물/단체 | 이삼달 |
| 발생|시작 시기/일시 | 1931년 |
| 발단 시기/일시 | 1930년 |
| 전개 시기/일시 | 1931년 10월-1932년 12월 |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32년 8월 7일 |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46년 10월 |
| 발생|시작 장소 |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연길시 |
1930년대 초 일본군과 만주국군 등이 해란강 일대에서 벌인 학살 사건.
일본군과 만주국군 등은 1931년 10월부터 1932년 12월까지 화연리를 중심으로 한 연길현 해란구에 대하여 94차례나 토벌을 감행하여 공산당원과 항일군 중 약 1,700여 명을 학살하였다. 대표적인 사례를 보면 다음과 같다.
1932년 음력 8월 7일 일본군 수비대와 자위단 70여 명은 3정의 중기관총과 경기관총, 1문의 포를 가지고 9호의 주민 밖에 없는 화연리 유정촌을 포위하였다. 그들은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불을 지르고 닥치는 대로 주민을 살해하였다. 이때 살해 당한 인원은 당원 28명과 농민 20여 명이었다. 특히 항일 유격대가 주둔했던 이삼달 집에서는 19여 명의 식구가 살해되었다. 그 가운데에는 2살 난 어린애가 있었고 70여 세의 할머니도 있었다. 이렇듯 일본군의 무차별한 학살로 유정촌은 피바다가 되었다. 이른바 “8·7 학살 사건” 이었다.
같은 해 음력 12월 12일 연길현 하동의 자위단과 연길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군 수비대와 만주국 경찰은 화연리에 또다시 토벌을 감행하였다. 그들은 장티푸스에 걸려 치료를 받고 있던 5명의 항일 유격대를 체포한 후 불 태워 죽였다. 그리고 수십 명의 항일 군중을 생매장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