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統監府 間島 派出所 |
|---|---|
| 분야 | 역사/근현대 |
| 유형 | 지명/시설 |
| 지역 |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용정시 |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 성격 | 기관 |
|---|---|
| 준공 시기/일시 | 1907년 8월 |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09년 11월 |
| 최초 설립지 |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용정시 |
| 주소 변경 이력 |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용정시 |
1907년 일제가 간도에 거주하는 한인을 보호한다는 미명을 내세워 길림성(吉林省) 용정시(龍井市)에 세운 파출소.
간도는 조선 후기 이래 많은 한인들이 이주해 살고 있던 지역으로, 주로 농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그러나 청(淸)나라에 의해 정치적·경제적 압박을 받게 된 간도 한인들은 본국 정부에 수차례 대책을 요청해 왔었다. 이에 조선 정부나 대한 제국 정부에서는 관리 등을 파견하여 간도의 한인들을 보호하려 했다.
1905년 이른바 ‘을사 늑약’을 강제 체결하여 한국의 외교권을 장악한 일제는 1907년 8월 일본 관리와 헌병을 파견하여 간도 파출소를 설치하였다. 그 이유는 간도 지역의 한인 보호를 위한다고 하였지만, 만주 침략의 교두보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었다.
간도 파출소의 인적 구성은 소장, 사무관, 헌병 장교, 군의, 통역관, 통역생 등으로 이루어졌다. 행정 조직은 총무과, 감찰과, 경무과, 조사과 등 4과와 헌병 분대를 두었다. 업무 분장에 대해서는 파출소장이 업무를 총괄하며, 소장이 사고 시에는 총무과장이 이를 대행하도록 하였다.
주요 활동 사항은 한인의 감찰 및 회유, 한인의 호구 조사, 한인의 이권 조사, 농업·산림·지질·광산의 조사 및 토목·측량·기상 관측 등 자연 환경에 대한 조사, 지역의 치안 유지 등을 수행하였다.
처음 간도 파출소는 현재의 용정 고급 중학교 안 동쪽에 있었다. 그러나 화재가 나서 지금의 용정시 인민 정부로 옮겼다고 한다. 1909년 일제가 중국과 “간도 협약”을 체결하고 일본 총영사관을 설치하면서 통감부 간도 파출소는 폐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