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리 전투

한자 靑山里 戰鬪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화룡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성격 전투
관련인물/단체 북로 군정서|대한 독립군|일본군 대부대
발생|시작 시기/일시 1920년 10월 21일
종결 시기/일시 1920년 10월 26일
발생|시작 장소 길림성 청산리 일대
정의

1920년 10월 북로 군정서대한 독립군 등 독립군 연합 부대가 길림성(吉林省) 청산리 일대에서 일본군 대부대와 10여 회의 대격전 끝에 대승을 거둔 전투.

역사적 배경

1920년 6월 7일에 발발한 봉오동 전투를 비롯하여 일련의 만주 지역 독립군과의 교전에서 패배한 일본군은 이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의 일환으로 1920년 7월 간도 지방의 독립군과 독립운동가들을 토벌하기 위한 ‘간도 지방 불령 선인 초토 계획(間島地方不逞鮮人剿討計劃)’이라는 군사 작전을 수립하고, 중국 측에서 중국군을 출동시켜 한국 독립군을 토벌해 주거나 아니면 일본군이 직접 간도 지방에 출병하여 한국 독립군을 토벌하겠다고 위협하였다.

이후 중국 군경과의 합동 작전이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10월 2일에는 마적단을 매수하여 일본 영사관을 방화하는 이른바 ‘훈춘 사건’을 도발하였다. 일본군은 이를 빌미로 10월 17일 0시를 기하여 간도에 출병하였다. 당시 간도에 침입한 일본군의 총 병력은 5개 사단에서 차출한 약 2만 5천여 명이었다.

경과

대규모의 일본군이 간도로 침입해 오자 독립군은 초기에는 피전책(避戰策)으로 대응했으나 일본군의 한인들에 대한 학살과 만행이 극에 달하자 독립군도 적극적인 대응에 나섰다.

이에 청산리 전투는 1920년 10월 21일 삼도구 청산리 백운평(白雲坪) 부근의 골짜기에서 독립군이 기습 공격을 통해 일본군을 대파한 백운평 전투를 시작으로, 1920년 10월 26일 새벽까지 약 6일간 10여 차례의 대소 전투에서 독립군의 연합 부대가 일본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두었다.

백운평 전투 이후 독립군은 완루구 전투와 천수평 전투, 어랑촌 전투, 맹개골 전투, 만기구 전투, 쉬구 전투, 천보산 전투, 고동하 전투 등에서도 일본군을 상대로 승전을 거두었다.

결과

전투가 종결된 후 임시 정부가 발행하는 『독립 신문』에서는 청산리 전투에 대해 김좌진홍범도의 독립군이 10여 차례의 대소 전투에서 격살한 왜병(倭兵)이 약 1,200명이라고 하였으며, 북로 군정서 총재 서일(徐一)은 일본군 전사자가 약 1,250명, 부상자가 약 200명이라고 보도하였다. 또한 중국의 『요동 일일 신문(遼東日日新聞)』에서는 일본군 전사자가 약 2,000명이라고 추산하기도 하였다. 따라서 청산리 전투는 일본군의 간도 출병의 의도를 완전히 무산시키는 성과를 거두었다고 하겠다.

의의와 평가

북로 군정서서일 총재가 청산리 전투에서 독립군이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요인에 대해 첫째, 생명을 돌아보지 않고 분발하여 용감히 결투하는 독립에 대한 군인 정신이 적의 심기를 압도한 것, 둘째, 양호한 진지를 선점하고 완전히 준비를 하여 사격 성능을 극도로 발휘한 것, 셋째, 응기수변(應機隨變)의 전술과 예민 신속한 활동이 모두 적의 의표에서 벗어나 뛰어난 것이라고 하였다.

또한 일본군의 패전 요인에 대해서는 첫째, 병가(兵家)에서 가장 기피하는 경적(輕敵)의 행위로 험곡장림(險谷長林)을 별로 수색과 경계도 없이 전부의 함몰을 당한 것, 둘째, 국지 전술에 대한 경험과 연구가 부족하여 삼림과 산지 중에서 종종의 자상충돌(自相衝突)을 낳은 것, 셋째, 일본군의 염전심(厭戰心)과 피사도생(避死逃生)하는 겁나심(怯懦心)은 극도에 달하여 군기가 문란하여 사법(射法)이 부정하여 1발의 효과도 없는 난사를 행할 뿐인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따라서 청산리 전투는 일본군의 간도 출병 작전을 완전히 실패로 돌아가게 하고 만주 지역의 독립운동을 보위하는 역할과 함께 이후 국내외에서 한민족의 독립 정신을 고취하는 역사적 역할을 수행하였다고 하겠다.

참고문헌
  • 신용하, 「독립군의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독립 전쟁」(『한국 근대 민족 운동사 연구』, 일조각, 1988)
  • 윤병석, 「청산리 대첩」(『獨立軍史』, 지식 산업사, 1990)
  • 한국 독립 유공자 협회, 『中國 東北 地域 韓國 獨立 運動史』(집문당, 1997)
  • 황민호·홍선표, 『3·1 운동 직후 무장 투쟁과 외교 활동』(독립 기념관 한국 독립운동사 연구소,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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