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朴允世 |
|---|---|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 지역 |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 성격 | 인물 |
|---|---|
| 성별 | 남 |
| 대표경력 | 고려 공청 만주 비서부 책임 비서 |
| 출생 시기/일시 | 1895년 |
| 활동 시기/일시 | 1922년 10월 |
| 활동 시기/일시 | 1923년 9월 |
| 활동 시기/일시 | 1926년 |
| 활동 시기/일시 | 1930년 3월 |
| 활동 시기/일시 | 1933년 3월 |
| 활동 시기/일시 | 1935년 9월 |
| 출생지 | 구 소련 |
1920~1930년대 만주와 러시아에서 활동한 한인 공산주의자.
소련연해주에서 출생하였으며, 가족은 황해도 송화에서 이주하였다.
1922년 10월 러시아 공산당에 입당했으며, 1923년 9월 주건(朱健)·마준(馬駿) 등과 함께 용정(龍井)의 동흥 중학(東興中學) 학생들을 중심으로 사회과학 연구회·학생 친목회를 조직하고 사회주의 사상을 전파하는 활동을 하였으며, 1924년 12월 고려 공산 청년회(高麗共産靑年會) 만주 총국(滿洲總局)을 결성하고 책임자가 되었다.
1926년 초 서울에서 결성된 고려 공청 중앙 위원회와 협의하여 고려 공산 청년회 만주 총국을 고려 공청 만주 비서부(滿洲秘書部)로 개편하고 책임 비서가 되었다. 1926년 5월 조선 공산당의 해외 지부로서 조선 공산당 만주 총국이 결성되고 만주에서 조직 활동이 본격화되자 10월 고려 공청 만주 비서부 성원을 이끌고 이에 입당하였다. 이후 고려 공산 청년회 만주 총국 조직부장과 조선 공산당 만주 총국 군사부장으로 활동하였다.
1927년 10월 제1차 ‘간도 공산당 사건(間島共産黨事件)’이 일어나자 소련으로 피신하였으며, 1928년 1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ML파 고려 공산당 만주 총국 조직을 재건하고 1929년 7월에는 ML파계 조선 공산당 만주 총국 군사부의 책임자가 되었다.
1930년 3월 1국 1당 주의(一國一黨主義) 원칙(原則)에 따라 중국 공산당에 입당하였으며, 4월 동만(東滿)에서 문갑송(文甲松)·김근(金槿)과 함께 간도 봉기(間島蜂起) 지휘 기관인 5·1 투쟁 행동위원회를 결성하였다. 9월 중국 공산당 연길구(延吉區) 군사위원회 서기가 되었다. 이후 남만(南滿)에서 유격대 결성에 참여했던 것으로 보인다.
1933년 3월 길림(吉林) 일본 영사관 경찰에 체포되었으며, 1935년 9월 일제의 관동 지법(關東地法)에서 재판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