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東滿 靑年 總聯盟 |
|---|---|
| 분야 | 역사/근현대 |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 지역 | 길림성 |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 성격 | 단체 |
|---|---|
| 설립자 | 이인구|이주화 |
| 설립 시기/일시 | 1926년 1월 25일 |
| 개칭 시기/일시 | 1928년 1월 13일 |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20년대 |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28년 1월 |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20년대 |
| 최초 설립지 |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용정시 |
동만 지방 청년 단체의 통일 조직으로 1926년 1월 결성된 항일 운동 단체.
동만 지방의 청년들은 3·1 운동 이후 민족 운동의 새로운 대안을 모색했다. 그 일환으로 사회주의 사상에 주목했고, 청년 단체의 결성을 통해 실현하고자 했다. 이러한 경향 속에 수많은 청년 단체가 조직되어, 1926년 현재 약 107개나 이르게 되었다. 이제 이 지방의 민족 운동은 청년 단체가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던 것이다.
특히 동만 지방은 이주 한인의 70% 이상이 거주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참의부·정의부·신민부 등과 같은 민족주의 무장 단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1920년 일제가 일으킨 경신 참변 이후 동만 지방에서는 이주 한인들의 구심점이 없었다. 따라서 동만 지방의 대중 운동을 이끌 통일 조직의 결성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었다.
1926년 1월 25일 동진 청년회 등 20개 단체 대표가 연길현 용정시의 시천교 강당에서 창립 대회를 열었다. 이 대회에서 합리적 사회 생활의 지적 교육과 실지 훈련, 상호 부조의 정신으로 대동 단결, 대중 본위의 신문화의 향상 등의 강령을 채택하였다. 이어 회장 이인구(李麟求) 및 이주화(李周和) 등 16명의 집행위원을 선출하였다.
동만 청년 총연맹은 연맹-지방의 청년 연합회-개별 청년 단체라는 조직 체계를 갖추었다. 가입 대상은 17세부터 30세 이하의 동만 지방에 거주하는 모든 청년들이었다. 1928년 1월 현재 11개의 지방 청년 연합회가 가입하였고, 그 산하에 102개의 청년 단체가 있었으며, 약 5,000명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었다. 동만 청년 총연맹은 1928년 1월 13일의 정기 대회에서 청년 단체의 민족 전선과 통일성 강화를 위해 동만 청년 총동맹으로 개칭하였다.
동만 청년 총연맹은 표방했던 강령에 맞게 새로운 지식과 문화를 습득하고 보급하는 활동에 노력했다. 각 지역의 주민들을 대상으로 야학, 연극 및 강연회의 개최 등의 활동을 통해 민족 의식의 고취와 사회주의 사상의 보급과 선전에 전념했다.
1920년대 중반 동만 지방에는 노동 단체나 농민 운동 단체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힘 있는 민족주의 운동 단체도 없었다. 따라서 동만 청년 총연맹은 1920년대 동만 지방 한인 사회를 이끌어 가던 대표적인 대중 단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