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具春先 |
|---|---|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 지역 | 길림성 흑룡강성 |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 성격 | 독립운동가|기독교인 |
|---|---|
| 성별 | 남 |
| 출생 시기/일시 | 1857년 |
| 활동 시기/일시 | 1905년 |
| 활동 시기/일시 | 1913년 |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4월 |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11월 |
| 활동 시기/일시 | 1920년 6월 |
| 활동 시기/일시 | 1920년 12월 |
| 활동 시기/일시 | 1921년 12월 |
| 활동 시기/일시 | 1927년 |
| 활동 시기/일시 | 1934년 |
| 몰년 시기/일시 | 1944년 3월 20일 |
| 추모 시기/일시 | 1996년 |
| 출생지 | 함경북도 온성군 |
| 거주|이주지 | 간도 |
| 거주|이주지 | 북간도 용정촌 |
| 거주|이주지 | 왕청현 백초구 |
| 활동지 | 북간도 장재촌 |
| 활동지 | 북간도 왕청현 합마당 |
| 활동지 | 연길현 국자가 |
| 활동지 | 길림성 용정 |
| 활동지 | 길림성 용정 |
| 활동지 | 길림성 왕청현 |
| 활동지 | 길림성 화룡현 |
| 활동지 | 밀산부 |
| 활동지 | 돈화현 양수천자 |
| 활동지 | 왕청현 백초구 |
| 활동지 | 왕청현 백초구 |
조선 독립 기성 총회의 회장과 대한민국 임시 정부 산하의 대한 국민 회의 회장을 지내며 중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1903년 간도 관리사 이범윤이 사포대를 조직하여 한인의 보호에 나서자 양수천자(凉水泉子)에 보호소와 병영을 설치하고 한인들의 보호에 주력하였다. 1905년 이범윤이 노령으로 망명한 후 한인 보호소를 운영할 수 없게 되자 북간도 용정촌으로 거점을 옮겼으며, 1907년 캐나다 선교사 구예선(具禮善)을 만나 기독교에 입교하였다.
1907년 같은 해에 김영학(金永學)·김약연(金躍淵) 등과 장재촌(張材村)에 연변 교민회(延邊僑民會)를 조직하여 회장으로 선임되어 민족 운동을 주도하였다. 1913년에는 합마당(蛤蟆塘) 교회 설립에 크게 기여하였다.
1919년 3월 1일 국내에서 3·1 운동이 발발하고 용정에서도 서울에서의 독립 선언에 대한 축하식이 거행되는 한편, 연길현(延吉縣) 국자가(局子街)에 본부를 두고 있던 대한 독립 의사회에서 주관한 만세 운동이 전개되고 조선 독립 기성 총회가 설립되자 이 단체의 회장으로 활동하였다. 또한 3·1 운동 직후에는 동지들과 함께 용정에서 『대한 독립 신문』을 간행하기도 하였다.
1919년 4월 상해에서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조직되자 조선 독립 기성 총회는 그 명칭을 대한 국민회로 개칭하였는데, 구춘선은 이때에도 회장으로 선출되었다. 1919년 11월에는 임시정부 군무부의 왕청현(汪淸縣) 교통부 책임자로 활동하였다. 1919년 12월에는 연길현 춘양향(春陽鄕) 합마당에서 약 20명과 비밀 집회를 갖고 간도에 국민회 지회 72개소를 설치하고 각 지회에 30명 이상의 간부를 두고 군자금을 대대적으로 모집할 계획을 세웠다.
1920년 2월에는 노령 방면으로부터 군총을 입수하여 독립군의 무력을 강화하였다. 1920년에는 국민회 안에 군사부를 두고 사관학교를 설치하여 독립군 양성을 추진하는 한편, 이 회 소속 독립군을 국내로 파견하여 일본군과 항전하도록 하였다. 1920년 6월 국민회 소속 독립군은 봉오동(鳳梧洞)에서 일본군을 격파하였으며, 그 뒤 청산리 전투에도 참전하였다.
구춘선은 1920년 12월 청산리 전투를 승리로 이끈 독립군단이 북정(北征)을 단행하여 밀산(密山)에서 대한 독립 군단을 조직하자 이에 참여하여 노령으로 이동하였으며, 자유시사변을 겪은 후 다시 동만(東滿)으로 돌아왔다.
1921년 12월 구춘선은 돈화현 양수천자(凉水泉子)에서 총판부를 조직하여 사관학교의 설립과 국내에 진공하여 일경을 암살할 계획을 세우는 등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한편 같은 해 12월에는 자유시 사변의 책임과 관련하여 대한 국민 의회문창범(文昌範)과 함께 고려혁명군정의회를 성토하는 성토문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1926년 구춘선은 왕청현 백초구(百草溝)로 이주하였으며, 1927년에는 국민회 동지들과 함께 북간도대한 국민회 재건 운동에 착수하였다. 1928년 11월에는 돈화현에 있는 마진에게 대한 국민당 조직을 명하였다. 1934년에는 한국 교회 희년(禧年)을 맞이하여 문재린 등과 함께 동만주 기독교 세력의 지하조직을 구축하는 등 활동을 계속하였다. 1944년 3월 20일 세상을 떠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96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