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림 구국군

한자 吉林 救國軍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성격 군대
설립자 왕덕림
설립 시기/일시 1932년 2월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32년 2월부터 1933년 1월까지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33년 7월 3일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31년 12월 7일
최초 설립지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왕청현 춘양
정의

길림성 변방군 소속 중국인 왕덕림(王德林)이 부대를 이끌고 나와 1932년 왕청현 춘양에서 항일의 기치를 내걸고 세운 항일 부대.

개설

1931년 12월 7일 안도현 명월구에 주둔하고 있던 길림성 변방군 제677단 3영의 병사들이 명월구 서남쪽 옹성라즈의 방어 구역 내 들어온 일본인 측량원을 쏘아 죽인 사건이 발생했다.

일제는 즉각 길림성 정부 및 길림에 주둔하고 있던 동북군에 항의했다. 이에 대해 부대의 책임자인 왕덕림은 정당한 임무 수행이었음을 표명했다. 그러자 동북군 부사령 장관 공서 참모장 희흡 등은 왕덕림 부대를 명월구에서 철수시키고자 계획했다. 군사 회의를 열고 왕덕림에게 부대를 인솔해 흑룡강성으로 가서 마점산 부대를 토벌할 것을 명령했다. 희흡의 계략을 간파한 왕덕림은 명령을 거부하고 부대를 이끌고 항일의 길로 나섰던 것이다.

설립 목적

1932년 2월 왕덕림은 소성자 즉 지금의 왕청현 춘양에 이르러 ‘나라를 위기에서 구하고 동북을 수복한다’는 취지를 내걸고 정식으로 구국군을 창립하였다. 왕덕림이 총지휘를 맡았고 공헌영이 부지휘를 맡았으며 오의성이 전적 사령에 임명되었다. 구국군항일 구국군 혹은 길림 구국군, 중국 국민 구국군, 동북 국민 구국군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렸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구국군은 1932년 2월부터 1933년 1월까지 돈화, 영안, 안도 등지에서 단독 혹은 각지의 항일 유격대와 연합하여 혁혁한 전과를 올리며 일본군에게 막대한 타격을 주었다.

특히 1933년 7월 3일 지청천이 이끌던 한국 독립군과 연합하여 일본군을 섬멸한 대전자령 전투는 유명하다. 대전자령 전투는 4~5시간에 걸쳐 치열하게 전개된 대격전이었다. 구국군 시세영 부대는 지청천한국 독립군과 연합하여 일본군 약 2개 대대 병력을 거의 전멸시켜 빛나는 승리를 거두었던 것이다.

참고문헌
  • 박환, 『만주 지역 한인 민족 운동의 재발견』(국학 자료원, 2014)
  • 최성춘 주필, 『연변 인민 항일 투쟁사』(민족 출판사, 북경, 1999)
  • 「독립군과 연합 항일 투쟁 구국군 관련 사진첩 발견」(『동아일보』, 1995. 4.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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