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15萬元 奪取 事件 |
|---|---|
| 분야 | 역사/근현대 |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 지역 |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용정시 |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 성격 | 군자금 마련을 위한 의거 |
|---|---|
| 관련인물/단체 | 윤준희|김준|박웅세|최이붕|한상호|임국정|철혈 광복단 |
| 발생|시작 시기/일시 | 1921년 1월 4일 |
| 발생|시작 장소 | 용정촌 부근 동량 상리사 동량어구 |
1919년 3·1 운동 이후 연변 각지에서는 항일 무장 단체들이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1910년대에 북간도에서 조직된 비밀결사 단체인 광복단(光復團)과 러시아연해주의 청수(水淸)에서 조직된 전투적 비밀 결사조직인 철혈단(鐵血團)이 1918년 말에 통합되어 철혈 광복단으로 확대 개편되었다.
철혈 광복단은 1918년 말 제1차 세계대전이 종결되면서 국내외의 독립운동 분위기가 고조되자, 보다 활발한 항일 무장 투쟁을 전개하기 위해 통합된 것이다. 두 단체의 단원들은 모두 1910년대 북간도 지역에서 활동하던 애국 청년들이 주축이 되었는데, 광복단은 북간도에서, 철혈단은 북간도 지역에서 활동하다가 연해주로 옮겨간 애국 청년들이 연해주수청지역에서 조직한 것이다.
15만원 탈취 사건은 북간도지역에 있던 철혈 광복단 단원인 윤준희(尹俊熙)·임국정(林國禎)·최봉설[崔鳳卨, 사건 후에 최계립(崔溪立)으로 개명]·한상호(韓相浩)·박웅세(朴雄世, 사건 후에 朴震으로 개명)·김준(金俊) 등 6명이 일제당국이 조선은행 회령(會寧)지점에서 북간도의 용정촌(龍井村)지점으로 운송 중이던 일화 15만 엔을 탈취하고 하는 계획을 추진하면서 시작되었다. 이들은 우선 용정 조선은행 출장소의 사무원인 전홍섭(全洪燮)을 설득하여 현금수송에 대한 정보를 제공받았으며, 1920년 1월초에 조선회령으로부터 용정으로 약 14~15만원이 수송되어 올 예정이며, 그 날짜는 1월 4일이거나 5일이라는 구체적인 정보까지 얻을 수 있었다.
이후 6명의 대원들은 용정촌에서 약 15리 떨어진 동량어구[東良於口, 현재 용정시 지신향 수동촌에서 용정방향으로 약 5리가량 되는 지점]에서 현금 수송대를 기다렸다가 이를 습격하여 수송을 책임졌던 일본인 순사를 사살하고 나머지 수송대원을 제압한 후 총 13만 5천원의 거금을 탈취하는데 성공하였다. 거사에 성공한 후 관련자들은 이 군자금을 활용하여 1. 수청(水淸)에 사관학교를 건립하고 군사인재를 배양할 것 2. 무기를 구입하여 간도의 왕청 나자구에서 군대를 편성할 것 3.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집을 구하여 독립운동 사무소로 사용함과 동시에 출판사를 세워 군사학 교재와 기타의 문건들을 출판할 것 4. 무기구입은 김하석·윤준희·임국정· 한상호 등이 책임질 것 5. 윤준희를 재무책임자로 위임하여 군자금 관리를 책임지게 하는 것 등을 결정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무기 구입을 책임진 임국정이 러시아에서부터 친분을 맺고 있었던 엄인섭(嚴仁燮)을 찾아가 무기 구입문제를 의논하였는데, 그는 독립운동에 종사하다 변절한 인물이었다. 엄인섭은 블라디보스토크 요새사령부 군수 보관원인 육군 포병대위에게 부탁하여 무기를 구입할 수 있다고 속이고 임정국에게 5만 루불을 받아간 후 이 사실을 블라디보스토크 주재 일본영사관에 밀고하였다. 엄인섭으로부터 정보를 입수한 블라디보스토크일본 경찰은 1월 31일 밤 윤준희·임국정·한상호 등이 머물고 있던 숙소를 급습하였으며, 담장을 넘어 탈출한 최봉설을 제외한 나머지 대원들을 체포하였다.
15만원 탈취 사건은 한인 독립운동가들이 일본의 조선 은행 자금을 직접 탈취하여 독립운동 자금으로 활용하려 했다는 점에서 일제 식민당국에 충격을 주었고 독립운동 세력을 비롯한 국내외 동포들에게 통쾌한 소식을 가져다 준 일대 사건이었다. 그러나 사건 발생 후 불과 27일 만에 주동인물 3명이 도피처인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에서 일본 헌병대에게 체포되었고, 자금의 거의 모두를 빼앗기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