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間島 日報 |
|---|---|
| 분야 | 역사/근현대|문화·교육/언론·출판 |
| 유형 | 문헌/연속 간행물 |
| 지역 |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용정시 |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 성격 | 친일 신문 |
|---|---|
| 관련인물 | 선우일(鮮于日), 김형복(金亨復) |
| 창간인 | 선우일 |
| 발행인 | 선우일 |
| 판형 | 9포인트 활자 12자 90행 12단 4면 |
| 창간 시기/일시 | 1924년 12월 2일 |
| 소장처 | 길림성 용정 |
1924년 간도 용정(龍井)에서 선우일(鮮于日)이 발행한 한국어 친일 신문.
1910년 용정에서 간도 일본 총영사관의 기관지로 창간된 『간도 신보』는 일본어 16면과 부록 형식으로 한국어 8면을 동시에 발행하였다. 1924년 12월 2일 선우일이 자본금 30,000원의 회사를 설립하고 한국어로 된 8면을 『간도 신보』에서 분리하여 새롭게 『간도 일보』를 창간하였다. 선우일은 1919년부터 조선 총독부의 파견기자로 간도에서 활동하면서 『만주 일보』를 발간한 경험을 바탕으로 『간도일보』를 발간하였던 것이다.
판형은 9포인트 활자 12자 90행 12단으로 구성되었다. 석간 4면으로 발행되었고 구독료는 월 75전이었다.
1932년판 『일본 신문 연감』에 의하면 간도일보사 임원진은 사주 및 사장 선우일, 정치경제부장 김형복(金亨復), 사회부장 사정현(史廷鉉), 정리부장 김원제, 영업국장 강원탁(康元鐸), 판매부장 이인섭(李寅燮), 광고부장 박일문(朴逸文) 등으로 구성되었다. 그리고 일반 사원 35명, 공장원 18명이 종사하며 윤전기 2대로 신문을 제작하였다.
발행부수는 1929년경 700~800부이었는데, 1931년 3,500부, 1934년 2,500부, 1935년 3,000부, 1936년 5,000부 등으로 점차 확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