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 회의

한자 靑島 會議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조약과 회담
지역 산동성 청도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성격 회의
조약/회담당사자 신민회
관련인물/단체 안창호|신민회
체결|제정 시기/일시 1910년 7월
체결 장소 중국 산동성 청도
정의

1910년 7월 신민회 인사들이 중국청도에서 독립운동 전략과 기지 개척에 대해 논의한 독립운동 회의.

체결 경위

신민회는 1910년 3월 긴급 간부 회의를 열어 ‘독립 전쟁의 전략’을 채택하였다. 즉 국외에 무관 학교를 설립하고 기회가 있을 때에 독립 전쟁에 대비할 것과 국외에 독립군 기지를 건설하고 독립군을 창설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조약/회담 내용

1910년 4월 안창호와 신민회 회원들은 각자의 경로를 통하여 국내를 탈출하였다. 이들은 중국청도에 모여 이른바 7월 경 ‘청도 회의’를 개최, 기지 개척과 독립운동 방침을 의논하였다. 이갑(李甲)·유동열(柳東說)·김지간(金志侃)·김희선(金羲善)·신채호(申采浩)·이강(李剛)·이종호·이종만·정영도(鄭英道) 등이 회의에 참석했다.

결과

안창호를 비롯한 일부 신민회 회원들은 러시아블라디보스토크(해삼위)에서 1910년 9월 다시 ‘해삼위 회의(海參崴會議)’를 개최하였다. 많은 논란 끝에 최종적으로 만주길림성 밀산현(密山縣)에 독립운동 기지를 개척하기로 합의하였다.

의의와 평가

청도 회의를 계기로 북만주밀산에 독립운동의 기지 한흥동(韓興洞)을 개척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참고문헌
  • 주요한, 『安島山全書』(흥사단 출판부,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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