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나까무라 事件 |
|---|---|
| 분야 | 역사/근현대 |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 지역 | 길림성 |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 성격 | 사건 |
|---|---|
| 관련인물/단체 | 나까무라|관옥형|둔간군 |
| 발생|시작 시기/일시 | 1931년 6월 27일 |
| 전개 시기/일시 | 1931년 8월 17일 |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31년 9월 18일 |
| 발생|시작 장소 | 흥안구 갈근묘 부근 소악공야부 |
일본군 참모 본부원(參謀本部員) 나까무라 신타로우[中村震太郞] 대위(大尉)가 1931년 6월 27일 만주 조색(洮索) 지역에서 간첩 활동을 하다가 동행자들과 함께 중국군에 살해된 사건.
만주의 조색 지역은 일본인의 여행이 법으로 금지된 지역이었다. 그런데 나까무라 대위를 비롯한 일행은 몽골인으로 변장하고 그 지역으로 잠입하여 간첩 활동을 전개하였다.
나까무라 일행은 소악공야묘(蘇鄂公爺廟)에서 관옥형(關玉衡)이 지휘하는 둔간군 제3단(屯墾軍 第3團) 중국군에게 체포되었다.
1931년 6월 27일 중국군은 나까무라와 동행하던 이스기엔타로우[井杉延太郞] 예비 조장(豫備曹長), 러시아인 1명, 몽고인 1명을 간첩죄로 확정 짓고 사살하였다. 일본 측은 1931년 7월 중순에 이 사건을 확인하고 그해 8월 17일 비로소 살해 사실을 공표하였다.
나까무라 사건은 ‘만보산 사건’과 더불어 1931년 9월 18일 일본 관동군이 만주 지역을 무장 침략하는 빌미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