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약진 운동

한자 大躍進 運動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성격 경제 성장 운동
관련인물/단체 중화인민공화국
발생|시작 시기/일시 1958년
종결 시기/일시 1962년 초
정의

1958년부터 1960년 초까지 노동력 집중화 산업을 추진하여 경제를 성장시키려던 운동.

역사적 배경

대약진 운동은 공산 혁명 후 중화인민공화국에서 근대적인 공산주의 사회를 만들 목적에서 1958년부터 1961년 말부터 1962년 초까지모택동(毛澤東)의 주도로 시작된 농공업의 대증산 정책이다.

경과

모택동은 ‘생산성 이론’에 근거해 농공업의 대증산 정책을 실시했지만, 농촌의 현실을 무시한 무리한 집단 농장화나 농촌에서의 철강 생산 등을 진행시킨 결과 3,000만 명에 이르는 사상 최악의 아사자를 내고 큰 실패로 끝이 났다. 모택동은 실추된 권위를 회복시키고자 ‘문화 대혁명’을 일으켰다.

결과

연변조선족자치주를 건설하고 승승장구하던 한인은 20여 년 간 추진된 개혁 운동으로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 1957년 반우파 운동, 1958년 대약진 운동, 1966년 문화 대혁명 등으로 이어진 20년간에 초대 자치주 주석 주덕해를 비롯해 한인 사회의 지도급 인사 대부분이 숙청당하거나 비판받았다. 이에 많은 지식인, 학자, 기술자 등이 북한으로 망명·이주하였다.

의의와 평가

대약진 운동 후 한인들은 중앙의 지시에 철저히 순응할 수밖에 없었다.

참고문헌
  • 황규선, 「延邊 조선族 自治州 經濟의 發展과 開放 이후의 現況」(『민족 문제 논총』 5, 1996)
  • 이창신, 「중국 대약진 운동의 정책 결정 과정에 대한 연구」(『한국 정치학 학보』 47-2,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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