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民族 革命黨 |
|---|---|
| 분야 | 역사/근현대 |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 지역 | 강소성 남경시 |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 성격 | 민족 통일 전선적 성격의 중국 지역 독립운동 정당 |
|---|---|
| 설립자 | 김원봉 |
| 설립 시기/일시 | 1935년 7월 5일 |
| 해체 시기/일시 | 1947년 6월 |
| 개칭 시기/일시 | 1937년 1월 |
| 최초 설립지 | 강소성 남경 |
| 주소 변경 이력 | 강소성 남경, 사천성 중경 |
| 주소 변경 이력 | 서울 |
1930년대 중반 남경(南京)에서 결성된 민족 연합 전선 성격의 항일 독립운동 정당.
1930년대 일제의 만주 침략 이후 중국 지역 항일 운동이 활성화되자, 1920년대 후반 이후 분산 침체되어 있던 독립운동 세력이 전선을 통일하려는 움직임을 시작했다.
이에 1932년 한국 대일 전선 통일 동맹 등의 시도가 있었으나 실패하고, 이후 동맹 형태의 연합체적 성격을 넘어서는 강력하고 광범위한 통일 전선체를 이루고자 설립되었다.
한국 대일 전선 통일 동맹의 좌절 이후 김원봉(金元鳳)을 비롯한 의열단 인사들을 중심으로 통일 동맹을 기초로 한 새로운 정당 형태의 통일 전선 조직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이에 1935년 7월 5일 남경에서 의열단, 조선 혁명당, 신한 독립당, 한국 독립당, 대한 독립당의 대표 14명이 모여 민족 혁명당을 결성하였다. 하지만 결성 몇 개월 만에 조직상의 분열이 발생하여, 조소앙(趙素昻)·지청천(池靑天) 계열이 차례로 이탈하여, 통일 전선적 성격이 약화되었다.
그러던 중 1937년 1월 남경에서 2차 전당 대회를 개최하여 정식 명칭을 조선 민족 혁명당으로 정하였다. 김원봉·지청천·윤기섭(尹琦燮)·성주식(成周寔)·신익희(申翼熙)·윤세주(尹世胄)·최동오(崔東旿) 등을 위원으로 선출하였으나, 이후 또 다시 분열되었다.
하지만 그해 7월 중일 전쟁 이후 중경(重京)에서 임시 정부를 중심으로 독립운동 정당·단체들이 재결집하여 연합 전선을 형성해가는 과정에 깊이 관여했으며, 조선 의용대·한국 광복군 등 항일 무장 조직의 결성과 확대를 주도하였다.
1945년 8·15 이후 민족 혁명당은 임시 정부의 일원으로 귀국하여 임시 정부 또는 민주주의 민족 전선의 일원으로 활동하다가, 1947년 6월 인민 공화당으로 바뀌었다.
민족 혁명당은 편의에 따라 당명 앞에 한국·조선·고려 등의 명칭을 붙여 사용하다가 1937년 이후 조선 민족 혁명당으로 정식화 되었다. 강령으로는 토지와 중요 산업의 국유화, 인민 무장 등을 내세웠다.
정치적으로는 보통 선거제와 자유권 보장 등 민주주의를, 사회·경제적으로는 토지 국유제, 대생산 기관 및 독점 기업의 국영화, 사회 보장 제도의 실시 등을 주장했다. 기관지로 『민족 혁명』, 『전도』 등을 간행하였다.
민족 혁명당은 수차례의 조직 분열에도 불구하고 1930년대 중국관내 지역 독립운동 전선의 통일을 지속적으로 추진해갔으며, 그 결과 1941년 이후 대한민국 임시 정부와 한국 광복군의 확대를 이루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