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間島 中央 學校 |
|---|---|
| 분야 | 역사/근현대|문화·교육/교육 |
| 유형 | 기관 단체/학교 |
| 지역 |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연길시 |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 성격 | 일본이 설립한 보통 학교 |
|---|---|
| 설립자 | 조선통감부 임시 간도 파출소 |
| 개교 시기/일시 | 1908년 7월 |
| 개칭 시기/일시 | 1910년 |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15년 9월 |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16년 3월 |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17년 7월 |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18년 5월 |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19년 8월 |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21년 8월 |
| 최초 설립지 | 북간도 용정 |
1908년 7월 북간도(北間島) 국자가(局子街)(지금의 연길현)에서 간도일본 총영사관과 조선 통감부의 관할 하에 개교된 교육 기관.
간도 중앙 학교는 1908년 7월에 북간도 용정(龍井)에 설립되었다. 1907년 8월 일본은 간도의 조선인들을 보호한다는 명의로 북간도 용정촌에 통감부 임시 간도 파출소를 설치하였다. 일제는 1907년 이상설 등이 용정촌에 설립한 북간도 민족교육의 효시인 서전 서숙(瑞甸書塾)을 폐교시켰다.
일제는 그 자리에 1908년 7월 “조선통감부 함경북도 도립 간도 중앙 학교”를 설립하였다. 도립 간도 중앙 학교는 1910년 간도 보통 학교로 개칭하였다. 1919년 간도파출소는 용정 교외에 새로운 교사를 짓고 간도 보통 학교를 이전시켰다.
1910년 11월 1일 간도 협약의 관련 규정에 따라 통감부 간도 파출소를 취소하고 간도 총영사관이 설치되었다. 그 뒤 간도 보통 학교의 규모를 확대하기 위해 1915년 9월 국자가에, 1916년 3월 노두구(老頭溝)에, 1917년 7월 백초구(百草溝)에, 1918년 5월 혼춘(琿春)에 각각 분교를 설립하였다.
그 후 1919년 8월 네 분교는 각각 독립된 보통 학교로 개편되었다. 1921년 8월 용정 간도 보통 학교는 간도 중앙 학교로 개칭하였다. 이로써 일본은 용정의 간도 중앙 학교를 중심으로 북간도의 중요한 요지들의 교육적 역량을 확보하였다.
간도 중앙 학교는 설립 당시 학생 수는 800명이었고 교원수는 일본인 6명에 조선인 10명이었다. 초기 간도 중앙 학교에서는 조선에서 파견된 일본 교감 1명과 조선인 교사 2명을 채용하였고, 파출소의 사무관이 명예 교장을 맡았다.
간도 중앙 학교는 파출소 소장의 감독 하에 있었고 개설한 교과목은 수신·국어(조선어)·산술·일어(1910년 한일합병 이후에는 국어로 개칭)·도화·체조·이화(理化)·지리·역사 등이었다.
간도 중앙 학교는 재정 투입이 적지 않았고 졸업 후 취직이 상대적으로 좋았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인 학생들이 입학을 꺼렸다. 1912년 1학년 학생 모집 정원은 60명이었는데 지원자는 50명 뿐이었다. 대부분의 조선인 학생들은 민족주의 학교를 선호하였던 것이다.
간도 중앙 학교 소속이었던 국자가 보통 학교는 현재 연길시 중앙 소학교로 되었고 간도 중앙 학교 원 자리인 서전 서숙 옛터는 현재 용정 실험 소학교로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