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穆陵 朝鮮 民族 敎育史 |
|---|---|
| 분야 | 문화·교육/언론·출판|문화·교육/교육 |
| 유형 | 문헌/단행본 |
| 지역 | 흑룡강성 목단강시 목릉시 |
| 시대 | 현대/현대 |
| 성격 | 단행본 |
|---|---|
| 저자 | 『목릉 조선 민족 교육사』 편찬 위원회(주필: 최재일 / 위원: 리종호, 김도훈, 최강일, 전철, 고삼룡 / 집필: 리종호, 김도훈 / 윤색: 한경룡, 최철룡) |
| 표제 | 목릉 조선 민족 교육사 |
| 저술 시기/일시 | 1996년 |
| 편찬 시기/일시 | 2004년 11월 |
| 간행 시기/일시 | 2004년 11월 |
| 소장처 | 黑龙江省 穆棱市 八面通镇 工农街 343号 |
| 간행처 | 黑龙江省 哈尔滨市 利民开发区 警官路 裕发新城 17号 |
| 발견|발굴처 | 黑龙江省 穆棱市 八面通镇 工农街 343号 |
흑룡강성 목단강시 목릉 지역의 한인 교육 역사가 담긴 책.
『목릉 조선 민족 교육사』는 중국에서 처음으로 목릉 한인 교육 100년사를 과학적이고 체계적으로 집대성한 자료집으로 2004년 발간됐다. 이 책은 목릉 한인 교육이 걸어온 길을 정리한 책이다. 한인 교육의 어제와 오늘을 이해하고 내일의 발전에 도움을 주고자 편찬하였다. 8년의 편찬 기간을 거쳐 출판되었다. 집필은 이종호 와 김도훈이 담당했다.
이 책은 중국 변강에 위치한 목릉의 백여 년에 걸친 한인 민족 교육을 담고 있다. 목릉은 일제 강점기 독립군의 중요한 활동 기지였으며, 동북 항일 의연군의 유격지였다. 또한 중국 내 국공내전 당시의 근거지이기도 하였다.
1880년대부터 한인들은 요령성, 길림성, 연해주 등지로 이주하였다. 조선인들은 이역 땅에서도 글방부터 세웠다. 초기의 옛 서당은 당시 한인 어린이들에게 한문과 한글, 산수, 유교 도덕 등을 가르치는 유일한 민간 초등 교육 기관이었다.
1900년대 초에 이르러 옛 서당은 조선의 애국적인 문화 운동과 중국 동북의 민족 사립 학교 창설 운동의 영향을 받아 점차 근대적인 학교 혹은 서당으로 발전하였다. 이러한 사립 학교들은 설립 초기부터 항일 애국적 성격을 띠었다. 흑룡강성의 민족 사립 학교에 1930년대에 접어들면서 마르크스주의가 신속히 전파되었고 공산주의 운동의 활동 기지로 변모하였다.
목릉현 신안툰, 마도석, 백초구, 향양툰, 량자하소참, 후영, 리수진, 츄피꺼우, 마교하 등 지역에서는 줄곧 항일 유격 활동이 지속되었다 동시에 항일 교육이 진행되었으며, 여러 형식의 진보적인 항일 학교가 생겨났다.
1931년 9·18 사변 이후 동북에 일본 제국주의자, 만청 정부, 조선 독립군 3자 간에 한인 청년에 대한 쟁탈전이 치열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목릉의 한인 사립 학교들은 광범위하게 한인들을 동원하여 일제의 정치적, 문화적, 침략 행위와 맞서 싸우면서 항일 학교로 발전시켜 나갔다. 하지만 만주 사변 이후 동북 3성을 강점한 일본 제국주의와 만주국의 강압과 식민지 노예 교육 제도로 인해 민족 사립 학교들은 폐교되고 말았다..
1945년 8월 일제가 패망한 후 흑룡강성의 여러 현, 시와 함께 목릉은 중국 공산당의 새로운 근거지로 변모했다. 이후 한인[조선족] 교육이 급속히 회복·발전되었는데, 아직 의식주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조건에서도 한인[조선족]들은 스스로 학교를 세웠다. 그 결과 흑룡강성에서는 민족 교육이 비교적 빠르게 회복, 발전하였으며, 중등학교와 같은 민족 교육 기관에서는 많은 청년들을 양성하여 국공내전과 중국 공산당의 토지 개혁 운동을 지원하였다. 동시에 각급 인민 정부와 교육 기관 및 기타 부문에 혁명적 간부로 양성하였다.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후 17년은 흑룡강성 한인[조선족] 교육은 황금 시기였다. 이 시기에 목릉 한인[조선족] 교육은 그야말로 눈부신 발전을 보였다. 소학교 뿐만 아니라 중등 교육 기관도 빠르게 회복되어갔고, 유아 교육과 성인 교육도 신속히 발전하였다. 당시 목릉에서는 유아 교육, 중소 학교 교육, 성인 교육을 망라한 새로운 교육망과 교육 체계가 형성되었다.
그러나 문화 대혁명 시기 좌파적 사조의 교란과 파괴로 인해 민족 교육은 좌절되었다. 그럼에도 목릉의 한인[조선족] 교육은 사멸되지 않았다.
한인[조선족]이 학교를 세우고 학교의 교육이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대중들의 지지와 성원, 교육 일군들의 끈질긴 노력의 결과였다. 특히 1980년대 중국의 개혁개방의 시기에도 한인[조선족]은 민족 교육의 진흥과 발전에 관심과 열정을 보였다. 당시 시장 경제의 산업화, 도시화의 물결 속에서도 광범한 교육 사업 일군들은 여전히 자기의 터전을 지켰으며, 많은 민족 인사와 교육자의 후대의 양성을 위하여 헌신적으로 사업하였다.
『목릉 조선 민족 교육사』는 단행본으로 412페이지로 구성되었다.
『목릉 조선 민족 교육사』는 6개의 발전 과정을 시기별로 다룬 장과 ‘목릉조선 민족 교육사 연대기’가 부록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장은 ‘중화 민국 시기의 목릉조선 민족 교육’에 관한 내용으로 총 5개의 절로 구성되었다. 이는 ‘조선인 마을의 형성’(1절), ‘중화 민국 시기 조선인 초기 교육-서당 교육’(2절), ‘조선인 사립 학교의 흥기와 발전’(3절), ‘조선인 사립 학교의 부류와 유형’(4절), ‘조선인 사립 학교의 교육 내용과 특점’(5절) 등이다.
제2장은 ‘만주국 시기의 목릉조선 민족 교육’에 관한 내용으로 총 4개의 절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은 ‘만주국 시기 일제의 식민지 노예 교육’(1절), ‘신학제를 실시한 후의 식민지 노예 교육’(2절), ‘만주국 시기 목릉인들의 항일 교육과 반노예 교육 투쟁’(3절), ‘만주국 시기 조선인 인구 정황과 목릉 조선인 학교 일반 정황’(4절) 등이다.
제3장은 ‘해방 전쟁 시기의 목릉조선 민족 교육’에 관한 내용으로 총 4개의 절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은 ‘당의 교육방침과 정책’(1절), ‘신민주주의 교육 제도의 건립’(2절), ‘목릉에서 신형의 정규화 교육의 실시’(3절), ‘목릉의 주요한 조선인 학교’(4절) 등이다.
제4장은 ‘건국 후 17년간의 목릉 조선족 교육’에 관한 내용으로 총 6개의 절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은 ‘당의 교육 방침과 정책 및 조선족 교육 발전’(1절), ‘목릉현 조선족 교육의 일반 정황’(2절), ‘중, 소학교 교육’(3절), ‘성인 교육과 유아 교육’(4절), ‘교원 대오 건설과 교육 행정 지도 사업’(5절), ‘교육 경비’(6절) 등이다.
제5장은 ‘문화 대혁명 시기의 목릉 조선족 교육’에 관한 내용으로 총 4개의 절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은 ‘정치적 재난’(1절), ‘민족 교육의 파괴’(2절), ‘교육 분야에서의 입표, 강청 반혁명 집단과의 투쟁’(3절), ‘목릉현 민족 교육 행정 및 주요한 조선족 중학교’(4절) 등이다.
제6장은 ‘새로운 역사 발전 시기의 목릉 조선족 교육’에 관한 내용으로 총 12개의 절로 구성되어 있다. 전반부에는 ‘교육 사업의 지도 사상과 방침 정책’(1절), ‘흑룡강성 민적 교육 사업의 방침과 정책’(2절), ‘목릉현 민족 교육의 회복과 발전’(3절), ‘목릉현 조선족 교육의 새로운 모습’(4절), ‘교원 대오의 건설 사업’(5절), ‘교육 경비’(6절) 등의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후반부에는 ‘민족 교육의 행정 관리’(7절), ‘교육 개혁과 제고’(8절), ‘교육질의 가일층 제고’(9절), ‘20세기 90년대 목릉현 조선족 교육’(10절), ‘목릉현 교원 연수 학교 민족 교연 연수부’(11절), ‘주요한 조선족 학교’(12절) 등의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마지막 부록 편에는 ‘목릉조선 민족 교육사 연대기’가 수록되어 있다.
『목릉 조선 민족 교육사』는 중국에서 처음으로 목릉 한인 교육 백년사를 과학적이고 체계적으로 정리한 자료집이다. 목릉현 일대의 조선족 학교에 관한 많은 정보를 지니고 있어 이 지역의 교육사를 살필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