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李成桂 解夢 |
|---|---|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 유형 | 작품/설화 |
| 지역 | 길림성 |
| 시대 | 현대/현대 |
| 성격 | 설화|석왕사 유래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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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요등장인물 | 이성계|무학 대사 |
| 모티프유형 | 이성계의 꿈과 무학대사의 해몽|석왕사의 건립 |
| 수록|간행 시기/일시 | 1982년 |
| 채록지 | 동북 3성 |
동북 3성에서 무학대사의 해몽을 들은 이성계가 석왕사를 건립했다는 것과 관련하여 전해지는 이야기.
중국 민간 문예 연구회 연변 분회에서 1978년과 1979년 2년을 거쳐 조선족 민간 문예에 대한 조사 사업을 실시하였다. 그 결과물이 1982년 10월에 『민간 문학 자료집』(3)으로 간행되었으며 「이성계의 꿈」은 연변 분회의 일원인 강문원이 정리한 것이다. 『민간 문학 자료집』(3)은 2006년 보고사에게 발행한 『민간 설화 자료집』(2)에 그 내용이 전재되어 있다.
이성계는 대담하고 용감한 장수였으나 자주 꿈 이야기를 하고는 그 꿈을 무학대사에게 해몽을 요구하였다. 한 번은 이성계가 방아 찧는 꿈을 꾸고는 그 꿈을 무학에게 말했다.
이에 무학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좋은 징조로 보입니다. 방아를 찧었으니 덜꾸덩덜꾸덩 할 것이 아닙니까? 그것을 글로 쓰면 덕가동(德加東)이니 동방에서 덕을 입힌다는 뜻이옵니다. 그러니 귀인이 될 징조인가 아뢰옵니다.”
또 이성계는 무학을 찾아가 꿈에서 ‘수탉이 날개를 치고 우는 것을 보았다.’며 그 해몽을 요구했다. 이에 무학은 이성계를 쳐다보며, “아주 좋은 꿈인가 봅니다. 수탉이 우니 날이 밝아올 것이고 닭이 울 때 ‘꼬끼오’하고 울었으니, 그 글자는 고귀위(高貴位)인즉 높은 자리에 앉는다는 뜻이니 장차 왕위에 오를 징조인가 봅니다.”라고 말했다. 이성계는 원래 왕위를 엿보고 있던 차에 왕이 될 징조라 하였으니 크게 기뻐하였고 해몽을 해주는 무학을 더욱 신임했다.
이성계는 또 무학을 찾아가 ‘집에 누워있는데 서까래 세 가지가 떨어져 자신의 등을 눌렀다.’는 꿈을 꿨다며 그 해석을 부탁했다. 또 무학은 이성계의 꿈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니올시다. 그것은 곧 왕위에 오를 징조입니다. 서까래 셋을 지였으니 그것은 임금 왕(王)자옵니다. 그러니 부디 대업을 이룰 때를 놓치지 마옵소서!”라고 말했다.
이성계는 크게 기뻐하며 그럼 앞으로 해야 할 방도를 무학에게 물었다. 그러자 무학은 이성계에게 절을 크게 짓고 부처님에게 시주하라고 권했다. 이성계는 무학의 말대로 강원도 안변군(安邊郡) 사기동 산골에 큰 절을 짓고 불공을 드렸다. 꿈을 임금 왕자로 해석하고 지은 절이라 해서 그 절의 이름을 석왕사(釋王寺)라 했다.
「이성계 해몽」의 주요 모티프는 ‘이성계의 꿈’, ‘무학 대사의 해몽’, ‘석왕사의 유래’ 등이다.「이성계의 해몽」은 이성계의 꿈과 그에 대한 무학 대사의 해몽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는 점에서 해몽담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이야기의 결말에 석왕사의 유래를 말하기에 사찰 기원담 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