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王德山 |
|---|---|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 유형 | 작품/설화 |
| 지역 |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안도현 |
| 시대 | 현대/현대 |
| 성격 | 설화|항일 전설|지명 유래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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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요등장인물 | 왕덕래|일본 토벌대 |
| 모티프유형 | 왕덕래 군장의 토벌대 섬멸|왕덕산의 유래 |
| 수록|간행 시기/일시 | 1992년 7월 |
| 수록|간행 시기/일시 | 2006년 4월 |
| 채록지 | 중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안도현 |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안도현에서 왕덕래 군장의 토벌대 섬멸 및 왕덕산의 지명 유래와 관련하여 전해지는 이야기.
1935년 11월 경 동북 항일 연군 제2군이 처장즈로부터 내두산으로 근거지를 옮긴 뒤의 일이다. 일본군은 새로운 항일 근거지를 소탕할 작정으로 이도선 토벌대 등 800여 명 병력이 참가한 토벌 작전을 벌였다. 이때 내두산 근거지에는 2군 사령부와 여러 중요 시설이 있었으나 병력은 두 개 연의 무장 부대 외에 일부 여전사와 20여 명의 소년 아동 단원밖에 없었다.
왕덕래 군장은 첫날부터 전선 진지에 나와 지휘하여 일본군의 여러 차례나 되는 공격을 물리쳤다. 그러나 수적으로 우세한 적들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삼면에서 공격을 하였다. 이에 왕덕래 군장은 부대를 세 조로 나누어 양익(兩翼) 부대로 하여금 적들을 맞서게 하고 자신은 일본군에 정면으로 반격했다. 왕덕래 군장의 부대는 수적으로 절대 우세인 일본군의 공격을 당해내기 어려웠다. 이때 마을에 남아있던 여전사와 부상병, 아동 단원이 「혁명가」를 부르며 왕 군장의 부대를 지원했다.
항일 군민의 열화와 같은 혁명 열정을 목격한 왕 군장은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어둠이 깃들자 왕 군장은 소분대를 출격시켜 적을 기습하였다. 기습에 놀란 일본군의 사기가 꺾이자, 왕덕래 군장은 전군에 총공격 명력을 내렸다. 전후방에서 공격을 받은 일본군은 모래알처럼 흩어지기에 바빴으며, 왕덕래 군장의 부대는 일본군을 추격하여 300여 명의 적을 소멸하고 대량의 무기와 탄약을 노획하였다.
항일 군민의 성원과 왕덕래 군장의 전술로 인해 내두산 보위전은 승리로 끝났다. 이곳 인민들은 싸움을 승리로 이끈 왕덕래 군장을 칭송하고자 그의 이름과 성을 빌려 보위전의 승전고를 울린 이 산의 이름을 ‘왕덕산(王德山)’이라 불렀다.
「왕덕산」의 주요 모티프는 ‘일본 토벌대의 내두산 침입’, ‘왕덕래 군장의 승리’, ‘왕덕산의 지명 유래’ 등이다. 항일 연군이 내두산으로 근거지를 옮기자 일본은 내두산에 많은 병력을 토벌대로 보낸다. 내두산에 왕덕래 군장의 부대는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항일 군민의 지원에 힘입어 토벌대의 공격에 대항한다. 그러던 중 왕덕래 군장은 기습으로 토벌대를 교란시킨 다음, 총공격으로 적을 섬멸한다. 이처럼 「왕덕산」은 항일 군민의 성원에 힘입어 토벌대를 섬멸시킨 왕덕래 군장의 영웅담이라 할 수 있다. 아울러 이야기의 결말에 왕덕산의 지명 유래가 언급된 점에서 지명 유래담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