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新昌洞 戰鬪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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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 유형 | 작품/설화 |
| 지역 | 길림성 백산시 장백조선족자치현 |
| 시대 | 현대/현대 |
| 성격 | 설화|항일 전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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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요등장인물 | 항일 유격대|일본군 토벌대|신창동 마을 주민 |
| 모티프유형 | 항일 유격대의 일본군 섬멸 |
| 수록|간행 시기/일시 | 1992년 7월 |
| 수록|간행 시기/일시 | 2006년 4월 |
| 채록지 | 중국 길림성 백산시 장백 조선족 자치현 |
길림성(吉林省) 백산시(白山市) 장백조선족자치현(長白朝鮮族自治縣) 신창동(新昌洞)에서 항일 유격대가 일본군 토벌대를 섬멸한 것과 관련하여 전해지는 이야기.
해방 전 어느 해 칠월 그믐날 새벽이었다. 장백현 이도강(二道崗) 신창동에 항일 연군 한 개 부대가 이곳에서 아침밥을 먹게 되니 식사 준비를 해달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소식을 듣자 동네 사람들은 마음 졸여 눈치를 살피면서도 돼지 등을 잡으며 식사 준비를 했다.
유격대가 마을에 도착하여 아침밥을 먹으려는데, 일본 토벌대가 이도강에 당도해 불원간 신창동으로 이동할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 소식을 들은 유격대는 아침밥을 먹을 새도 없이 일어서려고 했다. 그런데 대장이 먼저 나가 산등성이에 올라가 천기를 보더니 다시 들어와서 아침밥을 먹으라고 하였다. 유격대는 대장의 명령대로 아침밥을 먹고 대장은 떠나면서 농민들에게 일본군이 오면 해야 할 방책을 알려주었다.
유격대는 두 패로 나눠서 길을 떠났다. 한 패는 동네 뒤의 감자밭 비탈로 오르락내리락 하더니 삼림 속에 자취를 감췄다. 또 한 패는 일본군이 있는 이도강 쪽으로 가더니 풀밭 근처에서 자취를 감췄다.
뒤이어 일본군이 총칼을 들고 신창동에 당도했다. 일본군이 유격대가 어디로 갔냐고 묻자 동네 사람은 유격대의 방책대로 감자밭 비탈을 가리켰다. 일본군 대장은 군도(軍刀)를 빼들고 감자밭 비탈로 올라갔다. 일본군은 비탈 밭에 엎드려서 삼림 쪽으로 총을 쐈다. 그러자 삼림 쪽에서도 총알이 날아왔다. 일본군은 엎드린 채 그쪽을 향하여 계속 총을 쏘아댔다.
그때 동네 산등성이에서 벼락 치는 소리와 함께 기관총과 보총의 총탄이 감자밭에 쏟아졌다. 일본군 대장은 첫 방에 쓰러졌고, 그 밑의 졸개들도 삼대 쓰러지듯 쓰러졌다. 두 패로 나누어져 있던 유격대가 앞뒤에서 공격해오니 일본군의 시체는 돌더미 같이 쌓였다.
「신창동 전투」의 주요 모티프는 ‘항일 유격대의 일본군 섬멸’이다. 항일 유격대는 신창동에 당도하여 이곳에서 아침밥을 먹으려 하지만, 일본군 역시 신창동에 올 것이라는 첩보를 듣는다. 이에 유격대 대장은 천기를 보더니 유격대에게 아침밥을 편히 먹게 한 다음, 유격대를 두 패로 나눈다. 이후, 신창동에 당도한 일본군은 유격대 수색을 하다가 감자밭에서 유격대에 포위되어 몰살을 당한다. 이처럼 「신창동 전투」는 천기를 읽고서 지혜롭게 일본군을 섬멸하는 항일 유격대의 영웅담이 잘 표현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