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孫元金의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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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 유형 | 작품/설화 |
| 지역 |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연길시 |
| 시대 | 현대/현대 |
| 성격 | 설화|항일 전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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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요등장인물 | 손원금|일본 순사|손원금의 형 |
| 모티프유형 | 손원금의 실명|손원금의 죽음 |
| 수록|간행 시기/일시 | 1992년 7월 |
| 수록|간행 시기/일시 | 2006년 4월 |
| 채록지 | 중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연길시 |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연길시에서 항일 유격대원 손원금의 비극적 죽음과 관련하여 전해지는 이야기.
처장즈 항일 유격대 근거지에 손원금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어랑촌 유격 근거지에 있을 때 병기 공장의 주요 책임자였고 ‘연길 폭탄’의 제조자였기에 근거지 사람들은 저마다 그를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손원금이 수류탄 제작 중에 의외의 폭발 사고를 당하여 두 눈을 잃고, 1936년 그의 고향인 금곡에 오게 되었다.
손원금은 두 눈이 멀었지만 고향 마을에서 하모니카와 피리, 바이올린 등을 가지고 「유격대 행진곡」, 「적기가」, 「메데가」 등을 부르며 선전 고동 사업을 하였다. 어느 날 마을 손원금은 환갑잔치에서 「결사전가」를 연주하는데, 마을의 갑장(甲長)이며 일제의 앞잡이인 양승준이 이 광경을 목격했다.
이 일이 있은 후, 손원금은 두 번이나 남양평 경찰 분서에 잡혀갔다. 일본인은 손원금에게 모진 고문과 회유를 하였지만, 손원금의 뜻을 꺾을 수 없었다. 손원금은 곤경을 치르고 풀려나와도 의연히 혁명 가요 등을 부르며 선동 고동 사업을 했다. 겨울이 되자 일본의 앞잡이 중 하나인 남양 경찰 분서의 남 순사가 금곡 마을에 나타났다. 남 순사는 마을에 들어서자 다짜고짜 손원금을 체포했다.
여러 날이 지나도 손원금이 돌아오지 않자 그의 형이 경찰 분서를 찾았다. 손원금을 용정 일본 총영사관에 넘겼다고 하자, 손원금의 형이 총영사관에 갔으나 그의 행방이 묘연하였다. 그러던 중 용정 어구의 길가에서 ‘소경 혁명자’라는 말이 들렸다. 형이 자세히 물으니 소경 혁명자가 모아산 꼭대기에 끌려가 비행기 소사와 비행기 폭격을 당했는데 그 시체의 행방이 묘연하다는 것이다.
형은 정신을 부여잡고 모아산에 가서 술을 붓고 그의 제사를 지냈다. 형은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다가 고향으로 발걸음을 옮겼으며 지금까지도 손원금의 죽음은 하나의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