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
| 유형 | 작품/설화 |
| 지역 | 요령성 심양시 |
| 시대 | 현대/현대 |
| 성격 | 민담|목도리 유래담 |
|---|---|
| 주요등장인물 | 장인|사위|아내|시체 |
| 모티프유형 | 사위 살해|부의 획득|악인 징치|목도리 유래 |
|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 1981년 4월 |
| 수록|간행 시기/일시 | 1983년 |
| 채록지 | 중국 요령성 심양시 소가둔 |
장인을 용서한 사위를 기억하기 위해 목도리를 두르기 시작했다는 유래가 담긴 요령성 심양시 소가둔 한인[조선족]의 이야기.
조선족 설화학자 배영진(裵永鎭)이 1981년 한인[조선족]이 모여 사는 심양시 소가둔에 설화 채집을 갔을 때 한 친척으로부터 김덕순이 대단한 이야기꾼이라며 소개를 받았다. 이에 배영진은 김덕순(당시 81세)을 만나 며칠을 두고 채록을 하였다. 당시 구술된 자료 중 「목도리를 두른 이야기」는 1983년 발행된 『김덕순 고사집(金德順故事集)』(상해 문예 출판사)에 「圍圍巾的故事」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이 책은 1991년 민속원에서 간행한 『조선족 구비 문학 총서(朝鮮族口碑文學叢書)』(21)에 전체 내용이 영인되었다. 2005년 보고사에서 발행한 『김덕순 민담집』에도 그 내용이 번역되어 있다. 「목도리를 두른 이야기」는 『김덕순 민담집』의 제목을 따른 것이다.
어떤 장인이 사위에게 함께 길을 떠나서 추수 전까지 돈을 벌고 오자고 권유했다. 사위 역시 장인의 뜻을 받아들여 둘은 집을 떠나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두 사람은 열심히 일하여 돈을 모으고 추수할 때가 되자 집으로 향했다.
장인과 사위는 돌아오는 길에 각자 자신의 번 돈을 세워보니 장인이 번 돈은 사위가 번 돈의 절반도 못 미쳤다. 사위는 자신이 번 돈으로 가족을 위해 쓸 생각을 했지만, 장인은 사위의 돈을 탐내어 사위를 해칠 생각을 했다. 사위가 담배를 피우려고 등지고 앉자, 장인은 칼을 꺼내 사위의 뒷목을 찔렀다. 장인은 쓰러진 사위의 돈과 옷을 뺏고 집으로 돌아왔다.
사위는 다행이 죽지 않고 깨어났는데 여전히 목에서 피가 흘렀다. 이에 흙으로 지혈하고 산고개를 넘다가 시체를 발견했다. 사위는 시체의 옷을 벗겨 매장한 다음, 그 옷을 입고 집으로 돌아왔다. 남편이 죽은 줄 알았던 아내는 남편이 돌아오자 반갑게 맞아들였다. 그리고 남편의 옷을 빨다가 그 옷에서 많은 돈을 발견했다.
다음날 장인은 자신의 환갑잔치에서 돌아온 사위를 보고 크게 놀랐다. 잔치 중에 사위는 주변 사람들에게 창을 하라는 권유를 받자 자신이 겪은 일을 창으로 불렀다. 그러자 사람들이 모두 분개하여 장인에게 덤벼들자 사위는 그들을 말리고 장인을 용서해 주었다. 이때부터 사람들이 사위의 넓은 도량을 우러르며 목도리를 두르기 시작했다.
「목도리를 두른 이야기」의 주요 모티프는 ‘장인과 사위가 돈을 벌기 위해 집을 떠남’, ‘장인의 살해와 사위의 회생’, ‘사위가 시체의 옷을 얻음’, ‘환갑잔치에서 장인의 징치’, ‘목도리의 유래’ 등이다. 이 이야기에는 사위가 목소리를 둘렀다는 내용이 확실하게 구연되지 않았다. 다만 사위가 뒷목의 상처를 보호하고자 시체의 옷을 목에 감싼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먼저, 「목도리를 두른 이야기」는 목도리를 하게 된 유래를 말하기에 기원담의 성격을 지닌다. 아울러 사위의 돈에 욕심을 낸 장인을 환갑잔치에서 혼낸다는 점에서 징치담의 성격을 지니며, 사위가 우연히 돈을 얻었기에 행운담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