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제례

한자 喪祭禮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평생 의례와 세시 풍속
지역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성격 전통의례
의례시기/일시 사후(死後)
시작 시기/일시 1960년대 이전
중단 시기/일시 1960년대 이후
재개 시기/일시 1980년대 이후
의례 장소 연길시 장백향 명신촌 영길현 강밀봉진 서광촌
의례 장소 영길현 강밀봉진 서광촌
정의

중국 연변 지역의 한인 사회에서 사람이 죽었을 때 지내는 의례.

개설

상례란 좁은 의미에서는 사람이 죽어서부터 장사를 지내기 전에 거행하는 행사를 말하고, 넓은 의미에서는 부모가 사망한 후 자식들이 상제로 있는 동안에 행하는 모든 예절을 말한다. 제례는 죽은 사람의 넋을 향해 음식을 차려놓고 일정한 의식을 치르는 것을 말한다.

중국으로 이주한 한인들은 1960년대 이전까지는 한국의 서민 계층에서 시행하던 상례와 제례를 그대로 실천하였다. 상례와 관련해서 당시에는 마을마다 상여계가 조직되어 있었다. 큰 마을은 단독으로 계를 조직하고, 작은 마을은 몇 개의 마을이 연합하여 계를 조직하였다. 18세 이상 되는 남성들은 모두 상여계에 가입하고 계에는 존위(尊位), 도감, 집사, 소임 등의 직책이 있었다.

제사의 경우도 우제(虞祭), 소상(小喪), 대상(大喪), 기제(忌祭), 졸곡(卒哭), 담제(禫祭), 생일 제사, 명절 제사, 삭망 제사 등 한국처럼 제례가 행해졌다. 그러나 1960년대 문화 대혁명과 1980년대 개방정책이 중국 내에 정착되면서 제사의 종류와 절차도 간소화되었다.

연원 및 변천

이주 한인들은 중국 내 정치, 경제적 변화가 없던 시기인 1960년대 이전까지는 한국처럼 일반적인 상례와 제례가 그대로 진행되었다. 그 이후 문화 대혁명을 거치면서 전통적인 상례, 제례는 크게 변개되었고, 1980년대 이후에는 개방과 함께 더욱 큰 변화를 겪었다. 과거 전통 일생의례 중 가장 복잡하고 까다로운 것이 상례와 제례였는데, 지금은 제일 간단한 의례로 바뀌었다. 장례의 경우 화장법은 효도에 어긋나는 폐습이라는 관념이 오랫동안 존재하였으나, 1980년대 이후 화장이 주도적인 장례 풍습이 되었다. 장례일도 과거 3일장, 7일장에서 1980년대 이후에는 2일장 혹은 당일장으로 변개되었다. 상복의 경우는 굴건제복(屈巾祭服)에서 1980년대 이후에는 남자들은 베감투로, 여자들은 흰 치마저고리로 상복을 대체하고 흰 종이꽃, 흰 완장, 흰 댕기 등 새로운 표식을 사용하고 있다. 장례 절차도 초혼, 염, 출상, 안장 등의 절차만 남았고, 출상 때 명정, 만장, 공포, 요여 등도 사라졌다. 운반공구도 상여에서 자동차로 바뀌었다. 부고 전달 방식은 1960년 이전에는 주로 사람들을 파견하여 부고를 알렸으나, 그 이후에는 사람과 전보를 이용하여 부고를 전달하였다. 1980년대 이후에는 전화를 이용하여 부고를 전달하는 사례가 일반화되었다.

제례의 경우는 전통적 제례가 행해졌지만, 1980년대 이후 제사는 우제(虞祭), 소상(小喪), 대상(大喪), 기일 제사, 생일 제사, 명절 제사 등만 남았고 다른 제사는 모두 사라졌다.

절차

1) 상례

사람이 죽어서 장사지낼 때까지의 행사를 초상이라고 한다. 초상은 촉광(屬纊)-초혼(招魂)-습(襲)-설전(設尊)-부고(訃告)-소렴(小殮)-치관(治棺)-대렴(大斂)-성복(成服)-성복제(成服祭)-장례(천구·발인·묘지선택·굴심·안장·입비) 등으로 이루어진다.

① 촉광 : 광(纊)은 솜을 말한다. 환자의 병세가 위급하면 자식들은 앉아 유언을 기다린다. 결혼 전인 남녀들은 참여하지 않는다. 운명이 임박하면 코와 인중에 솜을 놓아 그것의 움직임을 보고 운명 여부를 확인한다. 이것을 ‘촉광’이라고 한다. 때로는 환자의 턱을 보거나 허리 밑에 손을 넣어보기도 한다. 턱이 떨어지거나 허리의 살이 축 처져 자리에 붙으면 운명한 것으로 판단한다.

② 초혼 : 죽은 사람의 혼을 부르는 것으로 “혼을 부른다”고 직접 표현하기도 한다. 환자가 운명하면 친척 혹은 이웃집의 중년 남자가 사망자의 흰 적삼을 세로로 접어서 오른손으로 중간 부분을 쥐고 출입문 밖 마당에 서서 북쪽을 향하여 큰소리로 사망자의 이름을 한 번 부르고 ‘옷 보라'고 세 번 외친다. 이때 일부지역에서는 사자상을 차려놓는다. 작은 상이나 큰 쟁반에 밥 3그릇, 술 3잔, 짚신 3켤레를 놓는다. 어떤 지방에서는 밥 1그릇, 반찬 1그릇, 짚신 1켤레를 놓는다. 초혼이 끝나면 상제와 복인들은 시신 곁에 모여앉아 곡을 한다. 초혼 전에는 곡성을 내지 않는다.

초혼을 마치면 상주(喪主), 주부(主婦), 호상(護喪)을 확정하고 축(祝), 사서(司書), 사화(死貨) 등을 맡을 인원을 지정한다. 만약 상여계나 혹은 향교가 있으면 그곳에서 상사를 처리한다. 상주는 장자가 담당하고 장자가 없으면 장손이 한다. 만약 장손이 어리면 차자가 상주역을 맡는다. 초혼이 끝나면 상주가 먼저 상복을 입는다. 부친상이면 왼쪽 팔 소매를, 모친상이면 오른쪽 팔 소매를 꿰지 않는다. 주부는 상주를 보조하는 여자 상제 가운데 대표이고, 호상은 상사를 처리하는 총지휘자로 상가집의 이웃이나 상례에 능숙한 마을 사람 중에서 선택한다. 축은 제례에서 축을 고하는 사람이고, 사서는 부고와 명정 같은 것을 쓰는 사람이다. 사화는 상례의 경비 지출과 조객들의 부의금을 접수, 기록하는 책임을 맡는다.

③ 습 : 죽은 사람의 시신을 씻어서 새 옷으로 갈아입히는 것을 말한다. 먼저 깨끗한 수건으로 사람의 얼굴과 손발을 닦아준 후 버들 숟가락으로 물에 불린 입쌀을 세 술 떠서 먹인다. 반함을 할 때는 ‘백석이요’. ‘천석이요’. ‘만석이요’ 외치며, 입쌀 이외에 구슬이나 동전을 넣기도 한다. 반함이 끝나면 솜으로 입과 눈, 코와 귀 구멍을 막고 얼굴도 솜을 펴서 가린다. 그리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히는데, 혹시 다시 소생할 수 있다고 여겨 수의를 입히지 않는다. 수의는 3일이 되어야 입힌다. 새 옷을 입힌 시신은 머리가 남쪽으로 향하게 하고 시상판은 수수깡으로 만든다.

습을 할 때 남자 상제와 복인들은 흰 두루마기를 입는다. 부친상이면 모자 양옆에 흰 베천 한 오리를 매달고 모친상이면 모자의 운두 밑에 두른다. 여자 상제들은 남자상이면 머리를 풀어헤치고 삼노끈으로 댕기를 매며, 여자상이면 베천 조각으로 댕기를 맨다. 상제들은 남녀를 막론하고 3년 동안 이렇게 한다. 복인들은 남녀 모두 베천 한 오리를 가슴에 단다.

부모가 세상을 뜨면 자식들은 죄를 지은 것으로 여겨 바깥출입을 삼가고 세수도 못하며 대소변도 외양간에서 본다. 온돌에 불도 때지 않고 동네 사람들이 죽을 쑤어 오면 남자 상제들이 먹고 난 후에 여자 상제들이 먹는다. 복인들은 마음대로 바깥출입을 할 수 있다.

④ 설전 : 초습을 마치면 시신의 머리 방향에 상식상을 올린다. 음식이 미쳐 준비되지 않은 경우에는 과자와 술을 먼저 놓는다. 상식상 음식은 사망자의 이웃집에서는 할 수 있으나 뒷집에서는 하지 못한다. 이것은 죽은 사람의 뒤를 따르면 좋지 않다는 관념 때문이다. 이때 상가 집의 상제나 복인들도 뒷집으로 가지 못한다. 음식이 준비되면 밥과 국 한 그릇, 고기가 들어가지 않은 남새 반찬을 놓는다. 맏상제가 밥 뚜껑을 열고 숟가락을 꽂고 참대 젓가락을 반찬 접시에 올려둔다. 쇠 젓가락은 사용하지 않는다. 술잔에는 술도 따르며, 밥과 국은 매일 끼니때마다 새것으로 바꾼다. 설전이 끝나면 조문을 받기 시작한다. 조객들이 정지문으로 들어오면 상제와 복인들은 일제히 곡을 하고 조문객은 말없이 절을 한 번 한다. 그런 다음 상주에게 ‘비감하시겠습니다’라는 위문을 드린다.

⑤ 부고 : 먼 곳의 친척에게는 운명하면 바로 부고를 띄우고, 가까운 친척에게는 초습을 마친 후에 알린다.

⑥ 소렴 : 죽은 사람에게 수의를 입히는 것으로 민간에서는 ‘상수를 입힌다’, ‘감장을 한다’고 말한다. 소렴은 운명한 지 2일 되는 날에 한다. 수의는 일반적으로 6승 베로 만든 바지와 저고리를 쓴다. 수의는 먼저 아래옷을 입히고 후에 윗옷을 입히며, 마지막에 악수를 매고 버선과 신을 신긴다. 신은 창호지를 접어서 만들기도 하고 베천에 종이를 붙여서 만들기도 한다. 만약 결혼할 때 입었던 한복이 있으면 그것을 수의로 쓴다. 한편, 여자가 죽었을 때 첫날 옷을 입히면 저승길이 확 뜨인다고 한다. 수의를 입힌 다음에는 광목으로 시신을 묶고, 그 이후에는 칠성판위에 시신을 올려둔다.

⑦ 치관 : 3일째 되는 날에는 관을 짠다. 관을 짜기 위한 널[집널]은 미리 준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집널은 홍송이나 백송으로 하고 4잎을 준비하는데, 머리 쪽에는 상(上)자를 다리 쪽은 하(下)자를 새겨둔다.

⑧ 대렴 : 시신을 입관하는 것이다. 관에는 시신 이외에도 조낭 주머니, 옷, 이불, 은가락지 등을 넣고 천개판을 덮는다. 그리고 그 위에 명정을 드리운다.

⑨ 성복 : 상제들이 상복을 입는 과정이다. 그리고 성복 차림이 끝나면 제사상을 차리고 ‘성복 제사’를 지낸다. 제사를 지낼 때는 윗방 문을 열어놓고 문발을 걷어 올리며 문밖에 멍석을 펴고 그 위에 돗자리 한 잎을 편다. 물을 담은 대야와 수건을 윗방 방문 안팎으로 각각 하나씩 놓는데, 이것을 “관수물”이라고 한다. 제사는 헌작-배례 등으로 이루어진다.

⑩ 장례: 시신을 묘소에 묻거나 화장터에서 화장하는 과정이다. 장례는 기수가 되는 날에 하는데, 1960년대 이전에는 5일장을 하였으며 부득이한 경우에는 3, 4일장을 하였다. 만약 장일을 미루다가 11일 장도 못하면 석 달 장을 하였다. 이때에는 모래를 가지고서 윗방에 임시 무덤을 만들어 관을 묻었다. 장례는 천구-발인-매장 순으로 이루어진다. 매장을 할 때는 한국처럼 달구질을 하는데 주로 경상도 출신 사람들이 한다.

⑪ 우제 : 죽은 사람의 넋을 위로하는 제사로, 초우, 재우, 삼우로 한다. 초우제는 장사를 치른 당일 날, 재우는 초우제를 지낸 이후의 첫 번째 유일에, 삼우는 재우제를 지내고 첫 번째 강일에 지낸다. 유일은 천간의 乙, 丁 , 己 , 辛, 癸 등에, 강일은 甲, 丙, 戊, 庚, 壬 등에 해당되는 날짜를 말한다. 연변(延邊) 지역에서는 초우제만 지내고 이튿날에 안신제를 지낸 것으로 재우와 삼우를 대체한다.

2) 제례

제례의 종류는 우제(虞祭), 소상(小喪), 대상(大喪), 기제(忌祭), 졸곡(卒哭), 담제(禫祭), 생일제사, 명절제사, 삭망제사 등이 포괄된다. 제사의 종류나 절차 등은 한국과 별 차이를 보이지 않는 것이 특징인데, 가정의 제사 절차는 설주(設主)·강신(降神)·진찬(進饌)·초헌(初獻)·고축(告祝)·아헌(亞獻)·종헌(終獻)·유식(侑食)·합문(闔門)·계문(啓門)·사신(辭神) 등이다. 묘지에서 지내는 묘제(墓祭)는 후토제[산신제]를 지낸 후 묘제를 지내는데, 진찬, 초헌, 고축, 아헌, 종헌, 우식, 고별 등의 절차가 이루어진다. 진찬에서 우식까지는 가정에서 지내는 제사 방식과 같고 고별만 차이를 보인다.

한인[조선족]들이 제사상을 차리는 방식은 지방에 따라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연길시(延吉市) 장백향(長白鄕) 명신촌(明新村)의 함경도 사람들과 영길현(永吉縣) 강밀봉진(江密峰鎭) 서광촌(曙光村)의 경상도 사람들의 제사상 차리는 방식은 다소 차이를 보인다.

그러나 제물을 진설하는 방식은 어동육서(魚東肉西), 홍동백서(紅東白西), 조율이시(棗栗梨柿), 두동미서(頭東尾西) 등의 규칙은 지켜진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1960년대 전까지만 하더라도 지켜진 한국의 전통 상·제례는 문화 대혁명(1966-1976)과 1980년대 개방을 거치면서 그와 관련된 민속적인 전통이 사라졌다. 상례와 관련해서는 상여계, 상여와 상여 소리, 상복 등이 사라졌고, 제례와 관련해서는 혼백 제작 기술과 절차, 제물 진설 방식 등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참고문헌
  • 홍세우 편저,『조선족 민속』, (연변인민출판사, 1982)
  • 北京大學 朝鮮 文化 硏究所,『민속사(중국 조선 민족 문화사 대계7)』, (민족 출판사, 2000)
  • 천수산,『중국 조선족 풍속』, (民族 出版社, 2008)
  • 심영숙 편저,『조선 민속 지식』, (遼寧 民族 出版社,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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