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硏子방아 |
|---|---|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 유형 | 물품·도구/물품·도구 |
| 지역 |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
| 시대 | 현대/현대 |
| 성격 | 농기구 |
|---|---|
| 재질 | 목재|석재 |
| 용도 | 도정|정미|제분 |
| 도구 제작|사용 시기/일시 | 1960년대 |
| 생산|제작처 | 요령성 |
| 생산|제작처 | 길림성 |
소나 말에 메워 돌려 낟알을 찧는 방아.
연자매라고도 한다. 방아와 맷돌은 작동 원리에 있어 차이를 보인다. 방아는 공이가 상하운동을 통해 곡물의 껍질을 벗기거나 가루를 내는 것으로, 손방아·디딜방아·물방아 등이 있다. 이와 반해 맷돌은 상하 두 짝 돌의 마찰을 통해 곡물을 가는데 사용한다. 따라서 연자방아는 연자매로 부르는 것이 타당하며, 『북학의』에는 ‘연마(連磨)’로 적고 있다. 그러나 연자매가 주로 방아처럼 쌀, 보리, 조, 피의 껍질을 벗기는데 사용한다는 점에서 연자방아라는 명칭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 연자방아는 주로 소나 나귀를 메워 돌린다.
길림성 회룡봉에서는 연자방아는 나귀를 메워서 돌린다. 소는 둔하고 다른 데도 쓸 일이 많고 가격도 비싸 잘 이용하지 않는다. 연자방아는 하루에 벼 같은 것은 서너 마대씩 쌀을 정미한다. 마지막 정미한 곡물은 키질을 해서 껍데기를 날려 보내는 데 주로 아낙네들이 한다. 키질은 풍구가 나오면서 사용하지 않았는데, 처음 나온 쌀겨는 ‘왕겨’라고 불렀고 부드러운 겨는 ‘등겨’라고 불렀다. 연자방아는 제분소가 생기면서 사용하지 않았다.
요령성 우가촌에서 정미는 1960년대에는 연자방아가 있어 벼, 옥수수 등을 갈았으며, 그 외에 집집마다 맷돌을 썼다. 집체시기에는 생산 소대마다 정미기계가 있어 트럭의 엔진으로 발동을 걸어 사용했다. 이때 연자방아는 기계 보조용으로 사용하였다. 현재는 과거에 쓰던 정미기계도 없고, 이주 한인들은 한족이 경영하는 방앗간에서 정미를 한다.
연자방아는 둥글고 판판한 돌판 위에 그보다 작고 둥근 돌을 옆으로 세우고, 이를 마소가 끌어 돌림으로써 곡식을 찧는 연장이다. 옛날에는 방아를 짓는 공간에 지붕을 설치하였는데, 이곳을 연자방앗간 또는 연자맷간이라 하였다.
밑돌은 땅바닥에 괸돌 위에 얹혀 있으며, 안쪽이 우긋하도록 나무로 만든 테를 두르고 돌과 흙으로 그 주위를 덧 쌓는다. 밑돌 가운데에는 구멍을 뚫고 이에 고줏대를 박아 윗돌은 이에 의지하여 돌아간다. 윗돌은 안쪽은 낮게 바깥쪽은 조금 높게 깎아서 언제나 안쪽으로만 돌아간다. 또 윗돌 양 가운데를 우긋하게 파고 고줏대와 방틀에 의지하여 양쪽에서 뺑이를 박아서 윗돌은 고줏대에서 함부로 이탈하지 않는다. 이 돌에는 방틀을 씌우고 그 한 끝을 마소에 잡아맨다.
한 사람이 마소 고삐를 잡고 앞에서 몰고, 다른 사람이 그 뒤를 따르며 넉가래로 곡식을 뒤집어주는데 이 사람을 ‘께끼꾼’이라고 한다. 연자매를 장만하는 데에는 비용이 많이 들어서 일반적으로는 마을에서 공동으로 마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