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리

한자 毫釐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물품·도구/물품·도구
지역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성격 농기구
재질 목재
용도 땅 갈기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90년대 이후
생산|제작처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안도현
정의

소에 매달아 논밭을 가는 농기구.

개설

쟁기는 견인하는 가축의 수에 따라 호리와 겨리로 나누어진다. 호리는 소 한 마리가, 겨리는 소 두 마리가 쟁기를 끄는 것이다. 농업 역사의 발전적 관점에서 보면 호리가 겨리보다 앞선 농법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시대 경직도에 호리와 겨리가 함께 등장하는 것을 보면 두 가지 모두 우리나라의 전통 경작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동북 3성 한인들도 경작지, 작물 등을 고려해서 호리와 겨리를 사용하고 있다.

연원 및 변천

호리로 논밭을 가는 쟁기류로는 ‘후치’, ‘외가대기’ 등이 대표적이다. 후치는 골을 째거나 김매는 데 주로 사용한다. 고랑을 째줌으로써 이랑 사이에 난 잡풀을 죽이고 곡식이 많은 영양물을 섭취하도록 북을 돋구어준다. 동시에 고랑 사이로 물이 잘 빠지고 공기도 잘 통하게 하여 가뭄이나 장마에도 곡식이 잘 견디게 해주고 강한 바람이 불어도 곡식이 넘어지는 일을 막아준다. 후치질을 호리로 하는 이유는 겨리를 사용하면 소가 곡식의 뿌리를 건드릴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외가대기는 비녀와 분살이 장치되어 있고, 춤바를 통하여 보습의 높낮이를 조정한다는 점에서 쌍가대기와 같으나, 두 갈래 성에 사이에 소 한 마리가 들어가 견인하고, 밭갈이보다는 주로 골을 내거나 씨앗을 덮는 데 또는 후치와 마찬가지로 잡풀을 제거하는 데 쓴다. 씨앗을 뿌리기 위해 골을 탈 때는 오른쪽으로 가대기를 기울이고 돌아올 때는 왼쪽으로 기울여 뒷사람이 뿌린 씨앗을 덮는데, 가대기는 후치보다 심경(深耕)이 가능하기 때문에 깊게 심어야 하는 콩이나 보리 경작에 쓴다.

현지 한인들은 논농사 지역에서는 겨리 대신 호리를 쓴다. 그 이유는 질퍽한 논에서 두 마리 소를 동시에 다루기 힘들고, 무엇보다도 긴 성애를 이용한 겨리에서는 소를 돌리기가 어려워 논의 가장자리의 많은 부분을 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 부분을 다시 인력을 이용해 갈아야 하므로 시간과 노력이 배로 든다. 그래서 논에서는 ‘겨리’보다 성에가 짧은 ‘호리’가 주로 쓰이게 된 것이다. 물론 심경을 위해서는 ‘겨리’가 적당하나 거름의 발달로 인해 ‘호리’만으로도 그 효과를 볼 수 있다. 그러나 호리는 농기계가 널리 보급되면서 1990년대 이후에는 일부 농가에서만 사용되고 있다.

형태

호리는 성에가 짧거나 두 가닥인 반면, 겨리는 성에가 길고 두 마리 소를 하나의 멍에에 연결하는 ‘쌍멍에’이다. 호리의 몸체는 성에와 술, 한마루가 세모꼴로 맞춤 모양을 띠고 있으며, 술 끝에 땅을 가는 보습을 달고, 보습 위에 갈린 흙을 떠넘기는 볏을 덧댄 구조로 되어 있다. 보습과 볏은 쇠로 되어 있고, 나머지 부분은 모두 나무로 되어 있는데, 성에와 술을 꿰뚫어 곧게 서 있는 나무를 한마루라고 한다. 한마루에는 한두 개의 구멍을 뚫어서 땅을 가는 깊이에 따라 술의 각도를 조정할 수 있도록 하고, 그 위에 ‘덮방’을 설치하여 고정하였다. 쟁기의 손잡이는 술 위에 가로목을 대어 양손으로 잡을 수 있게 만들었는데, 이는 조선 쟁기만이 가지고 있는 특징이기도 하다. 양손 손잡이를 잡아 보습을 올리고 내리며 좌우로 기울게 만들 수 있다.

길림성(吉林省) 안도(安圖) 신촌(新村)의 호리인 ‘외가대기’는 가로손잡이를 술에 끼우고, 비녀와 분살, 춤바의 장치 등 가대기 고유의 특징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연변(延邊)과 함경도 지역에서 쓰이고 있는 가대기와 달리, 성에는 굽었고, 까막 머리에 봇줄을 연결하여 한 마리의 소가 끈다. 또한 가대기 좌측 편 한마루와 귀살 사이에 세로목을 묶어 그것으로 종자를 심기 위한 골을 가르도록 한다. 이 가대기는 우리나라의 호리와 함경도의 가대기를 혼합한 형태로서 우리나라 경상도 지역에서 이주해온 사람들이 그들의 관습에 맞게 가대기를 변형시킨 것으로 생각된다.

후치는 고향이 어느 곳인가에 따라 멍에에 연결하는 방식이 다르다. 평안도 이주민의 경우, 두 갈래 성엣대와 멍에를 직접 연결하고 있는 반면, 함경도의 경우는 짧고 곧은 성에 끝에 두 갈래로 된 후치채를 끼워 후치채가 돌게 만들었다. 그래서 밭 가장자리에 다다르면 함경도후치는 평안도후치보다 회전하는 데 자유롭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한국 농기구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쟁기이고, 농사의 시작을 알리는 것도 쟁기갈이이며, 농가(農家)에서 ‘소 없이는 농사 못 짓는다.’고 이르는 말도 쟁기를 갖추고 있음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농촌의 젊은이가 ‘장가 들만한 자격’의 기준을 쟁기 부리는 기술에 두었던 것은 쟁기가 농경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컸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참고문헌
  • 김광언,『중국 길림성 한인 동포의 생활 문화』, (국립 민속 박물관, 1996)
  • 김광언,『한국농기구고』, (한국 농촌 경제 연구원, 1986)
  • 정연학,『한중 농기구 비교 연구』, (민속원, 2003)
이전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