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야 | 생활·민속/민속 |
|---|---|
| 유형 | 물품·도구/물품·도구 |
| 지역 |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
| 시대 | 현대/현대 |
동북3성 지역 한인 사회에서 벼, 보리 따위의 이삭에서 낟알을 떨어낼 때 쓰는 농기구.
예전에는 개상을 이용해 벼 이삭을 털어냈으나, 일제 때 그네가 보급되면서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 한인들은 나무 틀로 만든 개상은 물론 돌 절구나 군제[돌태] 등의 농기구를 이용하여 탈곡하였다. 돌 절구의 경우는 절구를 뒤집어 놓고 그 위에 볏단을 때렸고, 군제는 논에서 거둬들인 볏짚을 너른 마당에 얇게 편 다음 이것을 소 멍에에 걸어 빙빙 돌아가며 끈다. 그러면 벼의 알갱이가 잘 떨어진다.
본래는 한족들이 사용한 것을 한인들이 따라서 사용한 것이다. 군제는 연암(燕岩)박지원(朴趾源, 1737~1805)이 쓴 『과농소초(課農小抄)』에서 한자로 육독(磟碡), 역택(礰礋)이라고 적고 있다. 용도는 흙을 다지는 데 사용하는 연장이다. 북방지역은 농토가 건조하여 습기 보호를 중시하는데, 파종을 한 후 군제로 흙을 다져주면 수분이 보호된다. 군제는 민가의 마당에서 흔히 볼 수 있을 정도로 사용이 빈번하다.
그러나 이러한 재래식 기구를 사용한 탈곡 작업은 많은 노력과 시간이 들게 되므로 점차 농업이 발달함에 따라 수고를 덜 수 있고 능률을 높일 수 있는 기계가 개발되었다. 그것이 인력 탈곡기(人力脫穀機)인데, 한인들은 이것을 ‘발마선’이라고 부른다. 현재는 동력을 이용한 자동 탈곡기가 사용되고 있다.
개상을 사용하는 농가는 현재 없다. 오늘날에는 탈곡기를 주로 이용하는데, 이것은 대에서 알곡을 떨어내고 검부러기 따위도 자동적으로 가려내므로 매우 편리하다. 장재(長財) 마을에는 탈곡기가 3대 있는데, 이는 기계 가격이 비싸 집집마다 구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을걷이 때가 되면 외지 사람들이 탈곡기를 가지고 마을로 들어와서 타작을 해주고 그 대신 돈을 받는다. 보통 한 시간 당 타작료는 20원[위안]이며, 기계 한 대당 한 철에 3천원 쯤 번다. 벼를 떠는 탈곡기의 값이 2천원이고, 옥수수를 터는 것은 1천원인 점을 고려하면 큰 수입이 아닐 수 없다.
탈곡기의 초기 형태는 인력 탈곡기이다. 인력 탈곡기는 발로 페달을 밟아 급동을 회전시켜 탈곡을 하게 되는데, 힘이 많이 들고 탈곡 손실이 클 뿐만 아니라 선별 장치 등이 없다. 동력 탈곡기는 손으로 줄기를 붙들고 이삭만 탈곡부에 넣는 수급식, 손 대신에 기계적으로 붙드는 자동 공급식, 줄기도 같이 탈곡부에 넣는 투입식이 있다. 현재 연변조선족자치주(延邊朝鮮族自治州) 지역에서 사용하는 탈곡기는 투입식이 우세하다.
자동탈곡기의 구조는 체인으로 된 볏짚 자동 공급 장치, 급동을 중심으로 한 탈곡 장치, 풍구(風具)를 중심으로 한 선별 장치, 탈곡된 벼를 보내는 이송 장치로 구성되어 있다. 급동 주위에는 뾰족한 고리 형태의 급치를 나선 형태로 달아, 이것을 회전시키고 벼·보리 등의 이삭이 달린 곡물을 넣게 되면, 급치가 곡물을 타격하여 낟알을 떨어뜨리게 된다.
탈곡 급동 아래로 떨어진 낟알이나 지푸라기는 풍구에서 나오는 바람에 의해 무거운 낟알은 밑으로 떨어져 이송 장치에 의하여 곡물만 모으는 곳으로 옮겨지고, 가볍거나 불완전한 낟알과 검불은 밖으로 내보내지게 되어 있다.
개상은 굵은 서까래 같은 통나무 네댓 개를 가로로 대어 엮고 다리 네 개를 박아 만든다. 여러 사람이 통나무에 볏단을 쳐서 곡물을 털어낸다. 군제는 돌을 넓고 둥글게 깎고 양쪽 가운데에 쇠를 박아 나무틀을 고정시켰다. 『농정전서(農政全書)』에는 군제의 형태에 대해 “길이는 주척(周尺)으로 3척(尺)이고 지름은 2척(尺)이며, 짧은 말뚝을 굴대의 양쪽에 깎아 박고 팔뚝만한 나무로 네모 틀을 짜서 씌웠으며 굴대통에 말뚝을 박아 고정시켰다. 그리고 앞쪽의 방개 비슷한 나무에 소나 나귀를 매어 끌게 하면 돌이 바퀴처럼 굴러가는데 이를 ‘혼축(混軸)’이라고 한다. 이것은 밭에서뿐만 아니라 마당에 굴려서 곡식을 털며 도리깨보다 훨씬 낫다. 이를 도로공사에 쓰면 흙 칼질을 한 듯이 반듯하며, 또 땅을 파서 터를 닦으면 거울판처럼 매끈하게 된다”라고 길게 설명을 하고 있다.
개상은 가족끼리 또는 품앗이 형태의 공동 노동으로 이루어졌으나, 탈곡기가 등장하면서 그 풍속이 사라졌다. 그 대신 탈곡기 주인과 일꾼 사이에 계약 관계가 형성되어 단기적으로 작업을 실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