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량 괭이

한자 改良 괭이
분야 생활·민속/생활
유형 물품·도구/물품·도구
지역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시대 현대/현대
정의

동북3성 지역에서 한족 괭이의 형태를 변형한 이주 한인의 개량형 괭이.

개설

괭이는 땅을 파거나 흙을 고르는 데 쓰는 농기구이다. 그 형태는 ‘ㄱ’ 자 모양이며 자루와 날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자루는 단단한 참나무, 느티나무 등으로 만든다. 날은 그 모양에 따라 조선괭이와 양괭이로 구분되는데, 조선괭이는 날의 폭이 좁고 두꺼우며 대장간에서 만든다. 반면, 양괭이는 삽처럼 날이 넓고 얇으며, 공장에서 대량 생산한다. 날 위에는 괴구멍이 있어 그곳에 긴 자루를 끼워서 사용한다.

연원 및 변천

요령성(遼寧省) 우가촌(于家村)과 와니전자촌(洼泥甸子村) 한인들은 한전(旱田)에서 북돋우기를 할 때나 밭에 배추·무·감자·오이·콩 등을 심기 위하여 이랑과 고랑을 낼 때 모두 한족의 괭이인 ‘뻬이룽’[背龍匈]을 쓴다. 이는 길이 120㎝ 정도의 나무 자루에 폭 7㎝ 정도의 두터운 날을 박아놓은 것이다. 현재 한인들이 전래의 조선 괭이를 쓰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우가촌과 와니전자촌 한인들이 한족 괭이를 변형한 개량 괭이를 사용한다는 점이다.

한족의 뻬이룽은 날의 폭이 좁아서 밭을 갈 때 여러 차례 땅을 내리찍어야 한다. 또한 흙을 떠내는 양이 적고 흙덩이가 옆으로 잘 퍼지지 않아 이랑을 짓기가 어렵다. 두터운 날의 무게도 오랜 시간 일을 할 때 부담이 된다. 그래서 1990년 초에 두 곳에서는 거의 동시에 이 도구의 개량이 행해졌다.

지리적으로 상당히 멀리 떨어진 곳이고, 어떠한 사회적 교류도 없던 두 곳에서 동시에 같은 종류의 기술 혁신이 일어난 것이다. 우가촌의 경우 두 주민이 한족 괭이를 개량을 했는데, 이들은 서로 자신이 처음 고안했다고 주장한다. 와니전자촌에서는 ‘가공소’의 주인이 이를 시행했고 자신의 고안이라고 주장한다.

형태

개량 괭이는 우리나라 괭이 중에서 날이 엄지 손톱처럼 판판하고 끝이 둥그런 모양새의 날과 유사한 형태이다. 우가촌의 한 주민의 괭이는 날을 달지 않고, 삽날의 괴통부위를 구부려 ‘ㄱ’자 모양을 만들고, 여기에 나무 자루를 박은 형태이다. 세 사람 모두 이 도구를 뻬이룽을 보고 응용하여 만들었으며, 뻬이룽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하여 날의 폭을 넓게 하고 무게를 줄였다.

개량의 결과, 밭을 갈 때에도 한 번에 넓게 고랑을 팔수 있고, 떠낸 흙의 양이 많으며 그 흙을 양옆으로 잘 퍼트릴 수 있어 이랑 짓기도 편하다. 아울러 작물에 북을 줄 때에도 효율적이며, 무게도 가벼워 힘이 덜 든다는 장점을 지닌다. 특히 우가촌 주민이 삽날을 구부려 만든 괭이는 삽날이 괭이 날보다 훨씬 가볍고 날의 폭도 넓어 이랑과 고랑 짓기가 편하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위와 같은 내용을 보면 세 사람 모두 각기 고안을 하였다는 점을 인정할 때 기술 혁신에 있어 그 계기나 착안한 사항이 일치하고 있음을 지적할 수 있다. 우가촌 주민끼리 약간의 차이는 있어도 세 사람 모두 경운과 북 돋우기, 경작지 조성, 작업의 효율성 등 기존의 도구가 가진 네 가지 측면의 단점에서 착안한 것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생각해 볼 것은 이들 모두가 자신의 채소밭[채지밭]을 경작하다가 이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합작 시기에는 개인의 경작이 허용되지 않았고, 공동으로 경영하는 넓은 면적의 농경을 신속하게 처리하는 것이 강조되었다. 이에 비해 개별 경영이 허용될 때 첫 번째 허용 구역이 가족별 채소밭이며, 두 곳 주민들 모두 이 채소밭의 경작에 각별한 노력을 기울였다. 주민들은 작은 면적을 집약적으로 농사짓다 보니 작목이나 재배 기술, 농기구의 효율성에 대해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다양한 생계용 작물들이 재배되며 다양한 작물들의 생육 주기에 따라 수시로 갈아엎고, 새로운 것을 심고 수확해왔다.

참고문헌
  • 조경만, 「제11장 도구와 물질 문화」,(『중국 요령성 한인 동포의 생활 문화』,국립 민속 박물관,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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