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판

한자 壯版
분야 생활·민속/생활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건물 전통 가옥
정의

중국 연변 지역 한인 마을의 전통 민가에서 온돌 표면에 까는 깔개의 하나.

개설

온돌의 장판은 종이에 기름을 먹여 만들기도 하고, 비닐이나 섬유판 같은 기성제품을 구입하여 깔기도 한다. 함경도식 가옥에서 부스께를 덮는 개폐식 마루널을 가리키기도 한다.

‘一’자형 온돌의 한족이나 ‘ㄷ'자형 온돌의 만주족이 실내의 일부인 온돌 위에서만 신발을 벗고 생활하는 방식과 달리, 전면 온돌인 방바닥 전체에서 신발을 벗고 지내는 좌식 생활을 하였다. 때문에 구들을 놓고 흙으로 발라 마감한 온돌 표면에 무엇인가를 깔아 실내에서의 청결을 유지해야 하였다.

장판의 역사적 함의와 기록

남창손진태 선생은 『온돌고』에서 온돌 표면 위에 볏짚이나 갈대 등으로 짠 자리를 깔거나, 종이에 기름을 먹인 장판을 시공하기도 하였다고 쓰고 있다.

“토상(土床) 하에 토석(土石)으로 몇 줄의 갱도(坑道)를 방의 넓이에 따라 만들고, 갱도 위에는 편평한 내화성이 많은 소위 온돌석(구들돌)을 틈 없이 깔고, 그 위에 세사(細砂)와 고말(藁末)을 혼합한 점토를 바르면 구들이 되는 것이다. 빈민은 이 구들 위에 곧 초석(草席), 노석(蘆席) 또는 거적 같은 것을 깔고 그 위에 기침(起寢)하나, 대개는 구들 위에 파지(破紙), 백지(白紙) 등을 몇 겹 바르고, 다시 그 위에 품질이 좋은 두터운 종이를 바른 뒤에 콩기름을 먹이는 것이다.”

장판의 역사에 관해서는, 17세기 중엽에 네덜란드인 하멜(H. Hamel)이 쓴 『조선국기(朝鮮國記)』에 “방바닥이 유지로 덮여 있다”는 기록이 있다. 18세기에 나온 『경도잡기(京都雜記)』에도 “방에는 누런 기름 종이를 발라서 기름처럼 미끄럽고, 그 위에 수복 무늬를 놓은 용수 돗자리를 펴고 화문 안석을 놓는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와 같은 역사적 기록으로 볼 때 장판은 적어도 17~18세기에 널리 활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주 한인의 장판 제작과 그 변화

20세기 초 이래 한인들은 온돌 표면에 기름 종이를 발라서 장판을 만들었다. 먼저 온돌 표면에 얇은 종이를 바르고, 장판지를 바른 후에 콩기름을 먹여 광택을 내었다. 지역에 따라 표면에 메주 풀로 신문지를 한두 벌 바르고, 신문지 위로 튀어나온 모래알을 눌러서 다시 시멘트 종이로 도배를 하여 장판을 만들기도 한다. 조금 여유가 있는 집들에서는 시멘트 종이 위에 기름을 바르기도 하였다.

장판은 시간과 자재와 비용이 많이 들었다. 구들을 자주 뜯는 일반 농촌 주택에서는 비교적 드물었고, 주로 도시 주택에서 이용되었다. 화학 제품이 발달된 이후에는 손쉽고 깔기도 편한 비닐 장판이 보편화되었다. 장판은 경제적 수준과 계층적·지역적·시대적 차이에 따라 종류와 질이 다양하였다.

참고문헌
  • 박경휘, 『중국 조선족의 의식주 생활 풍습』(집문당, 1994)
  • 박은정, 「중국 연변조선족자치주 전통 민가의 형식과 변화」(연세 대학교 석사 학위 논문, 1999)
  • 김남응·강재철, 「주해 소진태의 온돌고」(『비교 민속학』19, 2000)
  • 「장판(壯版)」(『한국 민족 문화 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1991)
  • 리태근, 「노전 깔개 」(http://blog.daum.net/litaigen8/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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