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

분야 생활·민속/생활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개념용어 걸어 다닐 때 발을 보호할 목적으로 신고 다니는 물건
정의

걸어 다닐 때 발을 보호할 목적으로 신고 다니는 물건.

개설

남자들의 신은 짚신, 나막신, 갖신 등이 있다. 짚신은 볏짚으로 삼은 신이고, 나막신은 나무를 파서 굽을 높게 만든 신이며, 갖신은 가죽으로 만든 신이다. 이후 고무신과 구두가 유행되기 시작하면서 짚신과 나막신은 점차 자취를 감추었다.

① 짚신

짚신은 볏짚을 엮어서 만든 신을 말하는데 보통 삼이나 왕골 등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식물의 줄기나 껍질로 엮어 만든 것도 짚신이라고 하였다. 농사를 위주로 하던 옛날에 짚은 사람들이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였다. 추수가 끝나고 농사일이 없는 겨울철이면 짚으로 새끼를 꼬고 짚신도 만들었다. 짚신은 먼저 바닥을 만든 후 옆을 만들었다. 옆은 앞에서 중간 정도까지만 막히도록 짜고, 뒷부분은 트이게 하여 끈 모양이 되도록 하였다. 일반적으로 짚신은 틈이 보일 정도로 좀 엉성하게 엮었다. 짚신은 만드는 방법과 재료에 따라 여러 종류가 있었는데 그 중 특별히 삼으로 촘촘히 엮어서 만든 것을 ‘미투리’라 하여 짚신보다 귀하게 취급하였다.

옛날 글이나 그림을 보면, 먼 길을 떠날 때 짐 보따리에 여러 켤레의 짚신을 매달고 가는 모습이 종종 묘사 된 것처럼 짚신은 재료를 어디에서나 얻을 수 있었고, 혼자서도 쉽게 만들 수 있었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가장 보편적이고 기본적인 신으로 되었다.

② 나막신

나무를 배 모양으로 파고 밑에 굽이 두 개 달린 신발로서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모두가 착용하였다. 이 나막신은 소나무나 박달나무, 오동나무를 비롯한 가벼운 나무로 만들었다. 특히 연변 지역에서는 자생하는 피나무가 가볍기 때문에 피나무를 깎아내어 만든 것을 많이 사용하였다. 무겁고 굽이 높아 활동하기에는 불편하여 먼 길을 갈 때나 말을 탈 때는 신지 않았고, 보통 비가 올 때나 진땅에서 많이 신었다. 남자용 나막신은 좀 투박하고, 여자용 나막신은 옆면에 여러 가지 무늬를 그리거나 코를 맵시 있게 파서 만들었다. 나막신은 고무신이 나오게 되면서 점차 사라졌다.

③ 미투리

생삼으로 삼아 총이 조밀하고 결이 고와서 짚신보다는 고급인 미투리도 착용하였다. 특히 신총을 마에 백지를 감아 만든 지총 미투리는 ‘백지 초신’이라 하여 특품으로 취급되었다. 지총을 섞어 만든 짚신은 부드러워서 혼례 때나 신을 만큼 고급품으로 여겼다. 신발의 뒤꿈치를 횟겻[회나무 속껍질]이나 가래겻[가래나무 속껍질]으로 감고 신총과 신총 사이를 하얀 삼베실로 감기도 하였다. 가래나무 속껍질을 감으면 가래나무 속껍질에 항균력이 있어 발뒤꿈치가 짓무른다든가 곪는 것이 방지되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고 한다.

④ 방한용 신발

연변은 겨울철에 눈이 많이 오는 지역으로 발을 보호하고 보온력이 뛰어난 분투나 가죽 도록이, 맥신 등의 방한용 신발을 신었다. 분투는 본래 황해도와 평안남도에서 옥수수 이삭의 속껍질을 벗겨 여러 가지 색으로 만든 신발로 연변에서도 많이 착용하였다.

가죽 도록이는 ‘가죽 도래기’라고도 하였으며, 가죽 조각들을 삼실로 바느질하여 꿰매 잇고 발등 부분은 가죽에 송곳으로 구멍을 촘촘히 낸 후 그 구멍들에 삼끈을 꿰게 되어있다. 이 도록이를 신고 삼끈을 잡아당기면 주름이 잡히면서 발에 잘 맞는 신발이 된다. 보온성이 좋아서 외출할 때나 먼 길을 갈 때 착용하였고, 가죽은 보통 토끼 가죽이나 개가죽 등이 사용되었다. 맥신은 짚으로 만든 화(靴) 형태의 신발로 가마니 만큼 굵고 두껍게 짜서 발전체를 감싸며 발목까지 오도록 한 것과 조금 짧은 것이 있다. 목이 짧은 맥신은 ‘사신’이라고도 한다.

⑤ 고무신

고무신은 주로 검정색이었고, 여자 고무신은 코가 뾰족하고 산울타리가 낮았으나 남자 고무신은 코가 높지 않았다.

⑥ 간편화

간편화는 밑바닥에 고무창이 대어졌고 윗부분은 헝겊으로 된 운동화로서 발등까지 오는 것이 대부분이나 군화와 같은 모양을 한 것도 있다.

변천

1900년대 초까지도 초신, 나막신, 진신, 당혜, 가죽도록이, 맥신 등과 같이 민족 고유의 신발들이 사용되었으나, 1930년대 이후에는 일본 문화의 영향으로 구두, 간편화, 고무신과 같은 새로운 신발류가 등장하였다. 해방 후에도 나무 껍질이나 풀로 만든 신[초신]을 신었다. 이때 짚신은 평상시 사용하고 초신은 결혼식에 신고 가는 귀중한 것이었다.

5, 60년대에는 나무에 구멍을 뚫어 나막신을 만들어 신기도 했고 앞코가 튀어나온 고무신을 신기도 했다. 또는 천으로 만든 신이나 운동화[인민화]를 신었다. 젊은 여자들의 경우 흰색 양말에 운동화나 구두를 신었으며, 문화대혁명 시기에는 단화나 슬리퍼를 착용하였다. 노인들은 창와즈[長襪]와 왕바신[王八鞋, 솜신을 가리킴] 과 같은 중국식의 버선과 신발을 착용하였다.

1980년대 이후에는 다양한 스타일의 신발이 유행하고 있으며, 그 소재도 거의 가죽이나 합성 피혁의 고급품이 인기 있다. 안쪽에는 보온 효과를 높이기 위해 털이 들어있고, 바닥은 눈에 미끄러지지 않도록 징을 박은 가죽이나 합성 피혁의 겨울용 부츠를 많이 신었다. 노인들은 여전히 왕바신이라는 중국 전통적인 신발을 많이 신고 있으며, 창와즈라는 버선을 신었다. 이 중국 신발과 중국식 버선은 매우 따뜻하고 가볍기 때문에 애용되고 있다.

참고문헌
  • 국립 민속 박물관,『중국 길림성 한인 동포의 생활 문화』 (국립 민속 박물관, 1997)
  • 심영숙, 『조선 민속 지식』(요령민족출판사,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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