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新樂村[五常市] |
|---|---|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 지역 | 흑룡강성 하얼빈시 오상시 민락조선족향 신락촌 |
| 시대 | 현대/현대 |
| 성격 | 조선족 마을 |
|---|---|
| 가구수 | 81가구 |
| 인구[남/여] | 280명 |
| 개설 시기/일시 | 1940년대 전후 |
| 변천 시기/일시 | 1958년 |
| 변천 시기/일시 | 1973년 |
| 변천 시기/일시 | 1984년 |
| 조선족 마을 | 흑룡강성 오상시 민락조선족향(동경 127°0′북위 40°5′) |
흑룡강성(黑龍江省) 하얼빈시[哈爾濱市] 오상시(五常市) 민락조선족향(民樂朝鮮族鄕)에 위치한 조선족 마을.
일제 식민지 정책에 의한 이주기인 1936년부터 1943년까지 총독부는 만선개척주식회사(滿鮮開拓株式會社)를 만들어서 조선의 농토를 수탈하여 일본 농민이 장악케 하고 땅을 빼앗긴 조선 농민들은 만주로 이주시켰다. 중국에서는 만몽개척회사(滿蒙開拓會社)가 이를 접수하여 지역 배치를 맡았다. 이때 흑룡강성이 농업 이민의 대상지로 선정되고, 오상 지역에도 안가진(安家鎭)을 중심으로 한 안가 농장을 설치하면서 조선인들이 대량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이러한 집단 이민은 새로운 형태의 조선족 마을이 형성되는 계기가 되었으며, 1940년을 전후하여 신락촌에는 주로 경상도에서 옮겨온 사람들이 들어와 마을을 이루고 수전(水田)을 개척하여 정착하게 되었다.
1958년 중국 정부는 1950년대 중반부터 시행되어 오던 합작사 체제를 한층 집단화시키는 방안으로, 경제뿐 아니라 정치·행정·사회 나아가 군사 기능까지도 포괄하는 조직체인 인민공사제도를 도입하였다. 인민공사는 대체로 향 정도의 규모에서 조직되었는데, 하나의 인민공사 내에는 마치 군사 조직처럼 여러 개의 생산대대가 포함되고 다시 하나의 생산대대는 몇 개의 소대로 분할되었다. 여기서 하나의 소대는 하나의 자연촌이 될 수도 있고, 규모가 큰 촌락일 때는 한 촌락의 부분구역이 될 수도 있었다. 신락촌의 경우 인민공사 체제 초기에는 이웃한 이가둔, 조벽둔, 만래둔과 더불어 ‘상광대대’라는 생산대대의 4개 소대 중의 하나로 편재되어 있었다. 1973년 신락촌이 농업기술과학 실험참으로 선정되고 난 이후에는 성광대대로부터 독립하여 그 자체가 하나의 대대급 단위로 승격되었다.
1984년 중국 정부는 당지도부가 생산대대의 조직을 통해 주민들의 생활을 총체적으로 통제하고 지도하는 위치에 있던 인민공사를 해체하고 행정조직의 개편을 단행하였다. 개편된 행정조직의 요체는 향의 수준에서는 공산당 지부로부터 독립된 조직으로서 그 관할하의 촌락들과 직할 기업들을 보다 자율적으로 관리해 나가는 기능을 향정부가 수행토록 하고, 촌락 수준에서는 생산대대를 해체하는 대신 촌민위원회라는 주민자치조직을 신설하는 것이었다. 신락촌의 촌민위원회는 법제상의 인원보다는 훨씬 적은 촌장, 회계 및 출납[겸임], 부녀주임, 민병련장 및 치보주임[겸임]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의 임기는 2년이며 특히 촌장은 당지부 서기와 함께 촌민들의 생산 및 기타 경제활동을 지도하는 핵심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흑룡강성에는 흑룡강, 우수리강(烏蘇里江), 목단강(牧丹江), 송화강(松花江), 위긍하(緯肯河), 호란하(湖蘭河) 등 강과 하천이 많아 수상교통이 편리하다. 과거에는 삼림도 무성하고 어업과 목축업이 주요산업이었다가, 청대에 들어와서 농업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기후는 한온대에 속해 겨울은 춥고 긴 반면 여름은 짧다.
신락촌은 하나의 자연촌이 곧 하나의 행정촌을 이루고 있는 조선족 집거촌으로 벼농사를 위주로 하는 곳이다. 이 마을에는 북서쪽으로 해발 300m 가량의 나지막한 산 하나가 보일 뿐, 나머지 방향으로는 넓고 평평한 평야지대가 이어지고 있다. 멀리 향의 서쪽으로 송화강(松花江)의 지류인 납림하(拉林河)가, 북쪽으로는 역시 송화강의 지류인 망우하(牤牛河)가 흐르면서 향의 서쪽과 북쪽 경계선을 형성하고 있다. 특히 신락촌 사람들은 납림하에서 갈라져 마을을 남북으로 가로질러 흐르고 있는 수로에서 물을 끌어와 농업용수로 사용한다.
연평균 강수량은 약 620㎜인데, 한해 강수량의 70%가 6~8월에 집중된다. 평균기온은 3.6℃이지만, 한여름에는 30℃를 웃돌 정도로 기온이 올라가고 한 겨울에는 영하 20℃까지 내려가 큰 기온차를 보인다.
민락조선족향은 전체 면적 42.5㎢ 크기에 1,470여 호의 조선족이 거주하고 있고 총 24개의 자연촌, 즉 둔(屯)과 하나 혹은 두서너 개의 둔들이 합쳐진 총 9개의 행정촌이 존재한다. 여기에는 신락촌을 비롯하여 동광촌(東光村), 홍광촌(紅光村), 성광촌(星光村), 우의촌(友誼村), 민락촌(民樂村) 등 6개의 조선족촌이 포함된다. 신락촌은 하나의 자연촌이 곧 하나의 행정촌을 이루고 있다.
지도상 동경 127°0′, 북위 40°5′에 위치한다. 흑룡강성의 중심도시인 하얼빈에서 남동쪽으로 약 100㎞, 오상시의 중심지인 오상진(五常鎭)에서는 북서쪽으로 약 25㎞, 그리고 민락향 소재지로부터는 북서방향으로 약 5㎞ 떨어진 곳에 자리잡은 조선족 집거마을이다. 마을 내 조선족 가구수는 81가구이고, 인구수는 280명으로 가구당 평균인원은 3.46명이다. 가구주를 중심으로 출신지역을 살펴보면, 경상도가 45명으로 가장 많고 평안도 10명, 함경도 9명, 경기도 5명, 전라도 4명, 황해도 3명, 강원도 2명의 순으로 나타난다. 또 본관 성씨별 통계는 전주이씨 11명을 비롯하여 경주김씨·경주이씨 각 5명, 수원백씨·해주오씨 각 4명, 안동권씨·창녕성씨·성산이씨·청해이씨·평택임씨 각 3명 등 모두 39개 성씨로 구성되어 있다.
마을 내 도로와 가옥들은 북동~남서 및 북서~남동 두 방향의 장방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향 소재지로부터 마을의 중앙을 관통하는 북동~남서 방향 주도로를 따라 마을에 들어서게 되면, 도로의 우측편으로 2열 횡대로 조선족의 가옥이 있는 곳까지가 신락촌이다. 마을의 조선족 가옥들은 모두 남향이다. 가옥 구조는 흙으로 지은 일자형(一字型) 홀집이 전형적인 양식이지만 지금은 몇 채 남아 있지 않다. 1980년대 초에 흙집을 부수고 기다란 건물을 양분하여 두 가구가 사는 형태의 벽돌로 지은 개량 가옥이 주를 이루고 있다.
기차와 버스가 주요 교통 및 운송수단이다. 기차는 오상에서 출발하여 민락향 소재지와 납림진(拉林津)을 거쳐 하얼빈까지 하루 5회 운행되고 있다. 버스의 경우 한포자(汗泡子)와 오상 사이에 개인이 운영하는 버스가 오전과 오후 한 차례씩 이 마을을 통과한다. 신락촌에서 향 소재지까지 가고자 할 때는 이 버스 편을 이용하거나 삼륜택시, 오토바이 또는 자전거를 이용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