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五道白河 |
|---|---|
| 분야 | 지리/자연 지리 |
| 유형 | 지명/자연 지명 |
| 지역 |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안도현 |
| 시대 | 근대/근대|현대/현대 |
| 성격 | 하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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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구간 | 백두산 |
오도백하는 1712년 조선과 중국 간 영토 분쟁에서 조선의 국경선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당시 조선과 중국 간에 백두산정계비를 설치하고 ‘동위토문(東爲土門), 서위압록(西爲鴨綠)’이라고 명기하여 양국 간의 경계를 정하였다.
이후 1869, 1870년 대흉년으로 조선민의 대규모 월경(두만강을 넘어 간도지역으로 이주)이 일어나자 양국 간 국경이 문제가 되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파견된 조선의 감계사 이중하는 1885, 1887년 두 차례에 걸쳐 감계 회담을 가졌으나 토문강에 대한 해석의 차이로 청나라와의 사이에 영토 분쟁이 발생했으며, 간도 및 녹둔도의 영유권 분쟁의 원인이 되었다. 이중하는 토문강을 현재의 오도백하로 간주하였던 것이다.